▲초대 상해 임시정부 조직도. 이승만이 대통령이고, 백범은 내무총장 산하 경무국장.
윤종훈
고종의 특사로 사형에서 감형된 뒤 탈옥해 계룡산 마곡사에서 승복을 입지만 곧 환속해 학교를 설립하고 애국계몽운동을 펼친다. 1911년 1월 초대 일본 총독 테라우치 암살 모의로 17년형을 선고받는 등 독립운동을 펼치다 1919년 3.1운동 뒤, 44살 나이로 중국 상해로 간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지기'를 자원하며 임시정부 내무총장 산하 경무국장을 맡아 헌신한다.
1932년 윤봉길 의거로 독립운동사 큰 획
좌우분열과 무장 독립투쟁세력의 이탈 등으로 위축된 임시정부를 백범은 끝까지 지켜낸다. 1926년 임시정부 최고 책임자인 국무령이 된 뒤, 1931년 '한인애국단'을 결성해 이듬해 1932년 한국 독립운동사의 획을 긋는 쾌거를 일군다. 1월 8일 한인애국단 소속 이봉창 의사의 일본국왕 암살사건은 미수에 그쳤지만, 4월 29일 윤봉길 의거가 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