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 교대, 무엇이 문제인가?' 강연에 나선 모리 히데키 나고야 대학 명예교수.
이두희
모리 교수는 "일본의 패전 처리 과정에서 미국이 자신들의 점령 정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천황의 전쟁 책임에 눈을 감고, '상징 천황'의 길을 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맥아더는 "천황은 20개 사단에 필적한다, 만약 천황을 전범으로 유죄에 처한다면 100만의 미군이 장기적으로 필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발언은 그 숫자가 얼마나 정확하냐의 문제라기보다 당시의 일본 사회에서 일왕이 갖는 지위가 어땠는지 보여준다. 모리 교수는 맥아더가 그런 상황을 잘 이해했다고 평가했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었을 때에도 일본은 일왕을 중심으로 '1억 총 옥쇄'를 외치며 끝까지 연합군과 싸우겠다고 외쳤지만, 일왕이 항복을 선언하자 바로 '1억 총참회'로 돌아섰다. 그만큼 일본 사회에서 일왕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전후 헌법이 새롭게 제정됐음에도 일왕의 지위는 여전히 헌법에 남아 사회를 지배한다. 모리 교수는 "헌법 1조에 '이 지위는 주권을 갖는 국민의 총의에 바탕한다'고 돼 있어, 마치 천황을 국민의 선출에 의해 뽑을 수라도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준다"라면서 "하지만 2조에서 바로 '세습'을 언급한다, 처음부터 모순을 안고 출발한 게 일본의 현재 헌법"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이 전쟁 최고 책임자인 일왕을 처벌하지 못하고 일본 사회 전체가 잘못된 역사에서 제대로된 교훈을 얻지 못하는 큰 배경으로 작용한다.
연말이 되면서 일본 사회는 '헤이세이(平成, 임기를 단위로 하는 연호) 마지막 천황 생일' '헤이세이 마지막 크리스마스' 심지어 '헤이세이 마지막 동창회' 등 어딜 가도 '헤이세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입에 붙일 정도다. 이 분위기는 "새해를 맞으면서 더욱 고조될 것이고 그 흐름 가운데 중요한 사회·정치적 사안들을 블랙홀처럼 모두 빨아 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모리 교수의 분석이다.
일본 언론은 얼마 전, 일본 정부가 내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의 국방 예산을 27조로 편성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모리 교수는 "지금까지 유례가 없는 최대규모의 국방 예산이, 내년 초에 열리는 국회에서도 이른바 '천황 교대' 분위기에 밀려 제대로 관심을 갖지도 못하고 통과되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일왕 즉위 행사에 드는 돈은 얼마?
이번 새 일왕 즉위와 관련한 정부 전체 예산이 166억 엔(한화 약 1690억 원)이라고 한다. 새롭게 즉위한 일왕이 풍년을 기원하는 '다이조사이(大嘗祭)'라는 제사를 하는데, 거기에 쓰이는 건조물 예산만 19억 엔(약 193억 원). 이 건조물은 사용 뒤 다음 날 철거·해체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즉위식에 쓸 오픈카 비용으로는 8000만 엔(약 8억 원)이 책정돼 있는데, 한 번 쓰고 나서는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민의 세금을 이렇게까지 낭비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왕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모리 교수는 또한 "황실규범에서 일왕 세습이 가능한 자를 '남자' '장자'로 제한한 것 또한 일본 사회가 갖고 있는 남성우위의식을 재생산하는 근본적 시스템"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姓)도 선거권도 주민등록도 없는 황실이야말로 비국민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비국민'이라는 말은 일본이 세계를 상대로 침략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그런 국가체제에 반대하거나 협조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 쓰였던 말이다.
모리 교수는 바로 침략전쟁의 최정점에 서서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이들을 '비국민'이라 부르며 탄압했던 일왕이야말로, 실제로는 국민으로서의 어떤 자격과 권리도 갖지 않는 '비국민'이 아닌가 하고 비꼬아 지적한 것이다.
일본의 '호헌' '개헌'은... 평화헌법에만 국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