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최근 태안화력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고 김용군씨의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군의 부모 뒤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중 노동 안전 관련 일부가 화면에 나오고 있다.
이희훈
17일 청와대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고 김용균님에 대한 애도와 함께 사고 원인에 대한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주문했습니다. 아직도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니,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좋습니다. 아직도 모른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만나길 권합니다. 당사자들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을 제쳐놓고, 도대체 어디서 누구와 비정규직 문제를 상의할 수 있습니까.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은 지난 11월 12일부터 대통령과 직접 만나 대화하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청와대는 묵묵부답입니다. 이전에 했던 약속을 생각하면, 만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현실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단호히 거부하고 행동해야 함을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이상 비정규직 노동이라는 부당한 현실 앞에서 가만히 있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왜곡된 현실을 방치해야합니까. 강요된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합법적으로 사람을 소모품으로 쓰고 버리는 잔혹한 사회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이들의 문제를 방치하는 한 "함께 잘 살아보자는 포용국가"라는 구호는 말잔치요 공염불일 뿐입니다.
교회는 지금 성탄을 준비하는 기다림과 희망의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때를 기다리며 희망을 노래합니다. 이 땅에서 가장 절박한 기다림과 희망을 지닌 사람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합법적으로 착취당하고 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일 것입니다. 이들을 외면하는 한, 우리의 기다림과 희망은 공허합니다. 거짓입니다.
아무쪼록 문 대통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에 귀 기울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많은 현안들이 산적해 있겠지만,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비정규직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없습니다.
작년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듯이, 다시 한 번 대통령이 나서야 합니다. 만나서,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와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강요된 죽음의 고리를 끊어내는 첫걸음을 함께 내디뎌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탄은 진정으로 우리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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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예수회 신부로 서강대학교 교수로 일합니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과 녹색연합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함께, 조금 더 작게,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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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공정, 정의... '김군들'에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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