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단 순레길에 오른 비노바 바베부단 순레길에 오른 비노바 바베
김용태
간디가 다하지 못한 일, 곧 사랑과 설득으로 경제적ㆍ사회적 혁명뿐만 아니라 도덕적 혁명을 수행해야 하는 일을 이어받았다.
"내가 간디 선생의 비폭력의 길을 따라서 양심적으로 근면하게 최선을 다해왔다는 것을 나의 마음이 증언하고 있다. 내가 좋아할 수 있었고, 동화될 수 있었던 그의 사상과 가르침들이 어떤 것이었든지, 나는 내 삶의 매 순간 그것을 온전히 인식하면서 실현하려고 노력해 왔다." (주석 2)
장일순은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간디와 그의 제자 비노바의 사상ㆍ신념ㆍ실천에 주목하였다.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 자연주의 평화사상, 이웃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에 관심이 모였다. 생의 가장 밑바닥이라는 감옥에서 3년여를 지내면서 세속적인 출세와 명예, 물욕 따위가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해서, 보다 근원적인 삶의 가치를 찾고, 세상의 한 구석이라도 정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에게 진실한, 타인에게 거짓되지 않은 삶을 살고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1964년부터 포도농사를 시작한다.
사회안전법과 정치정화법 등에 묶인 것과는 상관없이 정치는 하고 싶지 않았고, 일체의 사회활동도 할 수 없는데다 대성학원의 운영에서도 배제됨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농삿일밖에 달리 없었다. 차라리 이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사회를 바꾸는 일은 패거리 의식과 야합이 판치는 정치판보다는 선량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밑바닥의 농사짓는 일을 택하였다. 가족의 생계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그동안(1965년) 삼남 동천(東天)이 태어나 부양가족도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