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수문학관은 독자적 건물이 아니라, 고향의 봄 도서관 지하에 들어선 소규모 전시관이다.
장호철
마지막 여정은 창원시 의창구 평산로에 있는 '고향의 봄 도서관'이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아동문학가 동원(冬原) 이원수(李元壽, 1911~1981)가 노랫말을 쓴 동요 '고향의 봄'을 딴 이 도서관 지하 1층에 동원홀과 '이원수 문학관'이 2003년 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글 :
이원수, '고향의 봄'에서 '굳센 일본 병정'까지)
초기에 민족적 입장을 견지했던 이원수는 중일전쟁(1937) 이후 본격적인 친일부역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어린이를 독자로 쓰는 동시라는 그릇을 이용하여 '황국신민'과 '내선일체'의 논리를 선전·선동했다. 민족적 정체성이 여물지 못한 어린이에게 그가 노래한 '씩씩한 일본 병정', '지원병 형님' 이야기는 어떻게 다가갔을지는 물으나 마나다.
1943년 1월 <반도의 빛>에 발표한 산문에서 아동문학가 이원수는 자신의 '아동관'과 '아동문화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반도의 아동은 "훌륭한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 "강제 받지 않고서 일본 정신을 가슴에 새"겨야 하며, 이를 위해 "동화, 영화, 연극, 회화, 음악, 무용, 완구" 등과 같은 건전한 아동 독물(讀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인 고향의 봄 도서관 지하에 영화 상영과 각종 공연을 위한 공간인 동원홀과 이원수 문학관이 들어서 있다. 이원수의 생전 활동을 담은 사진 패널을 걸어놓은 복도를 지나면 오른쪽이 이원수문학관이다. 독자적 건물이 아니라 도서관의 부속 시설인 181㎡의 소규모 전시실이다.
4년 전에 이원수의 친일문학 글을 쓸 때 이원수 문학관 누리집(
바로 가기)에서는 그의 연보에 단 한 줄로 친일 전력(1942년 '지원병을 보내며' 등 친일작품 발표)이 씌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채만식문학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원수문학관 오른쪽 벽에는 '일제 말기 친일작품'이라는 제목의 전시물이 보였다.
그의 친일시 '지원병을 보내며'(1942)와 함께 그의 변명 격인 '털어놓고 하는 말'(1980) 일부가 전시되고 있었다. 그가 분명 뉘우쳤을 것이라고 쓴 이오덕(1925~2003)의 글도 걸려 있었다.
이오덕은 이원수가 "불의와 부정을 싫어하고, 어떤 권력 앞에서도 굽히거나 타협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았고 "4·19 때 독재자에 항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전태일을 동화와 동시로 쓴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단지 심증일 뿐, 이원수는 살아서 친일을 고백하거나 참회한 적이 없다.
누리집에도 '작품감상' 꼭지의 맨 아래에 '친일작품'란을 따로 두어 전시관의 전시물과 같은 형식의 글을 실어 놓았다. 그러나 '친일작품'은 단 한 편, '지원병을 보내며'뿐이다. 그는 동시 2편, 자유시 1편, 수필 2편 모두 다섯 편의 친일작품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