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토호문제에 관해 누구보다 오랫동안 연구하며, 실상을 파헤쳐 온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 겸 출판미디어국장.
김주완
"1990년 기자 노릇을 시작해 25년 동안 기자로 살아왔다.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지금은 이사로 있다. 저서로는 <토호세력의 뿌리>(2005, 도서출판 불휘),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2007, 커뮤니케이션북스),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2012, 산지니), <김주완이 만난 열두 명의 고집 인생>(2014, 피플파워), <풍운아 채현국>(2015, 피플파워), <별난 사람 별난 인생>(2016, 피플파워) 등이 있다."
자신의 이력을 이렇게 소개한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 이사 직함보다 오히려 기자가 더 잘 어울리는 그가 <사람과 언론> 이번 겨울호의 사실상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지역의 토호문제를 가장 심층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연구하며 기사로 다뤄온 언론인이기 때문이다.
<토호세력의 뿌리>란 책을 비롯해 토호세력의 형태와 특징, 대안에 관한 논문, 보고서, 기사 등을 통해 누구보다 관심 있게 살피며, 심층적으로 이 문제를 다뤄온 장본인이다. 다음은 서면으로 보낸 답변을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한 내용이다.
- 오래전에 <토호세력의 뿌리>란 책을 통해 지역의 토호세력의 실상에 대해 잘 지적해 주었는데, 그 때의 문제의식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는지? 특히 '토호는 영원하다'는 주장을 피력하였는데, 지금은 어떤 행태로 토호세력들이 군림하고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고 본다. 토호의 속성은 보수도 진보도, 좌파도 우파도 아닌 '기회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익을 챙기는 데 유리한 쪽, 즉 힘 있는 편에 붙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그래서 2005년에 쓴 책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토호는 영원하다'고 했던 것이다."
- 토호세력의 골 깊은 뿌리는 언제부터 형성돼 왔다고 보는지?
"토호(土豪)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라고들 한다. 그러나 현재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토호세력의 뿌리는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다고 본다. 즉 친일세력이 그 뿌리가 된 거다. 그들은 친일행위를 통해 부와 권력을 누렸고, 해방 후에는 반공을 앞세운 독재세력에 빌붙어 그 부와 권력을 연장 또는 세습해왔다. 내가 사는 경남 마산의 향토기업들도 그 뿌리는 일제강점기로부터 비롯되었다."
-토호세력의 가장 큰 횡포와 폐해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역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적자원의 공정한 분배와 배분'이다. 그러나 이들 토호세력은 지역의 행정 및 정치권력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결탁해 각종 이권과 특혜를 받아낸다. '자원의 공정한 분배'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파괴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선거 과정에서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에게 보험을 들 듯 자금을 지원한다. 유력한 두 명에게 양다리를 걸쳐 지원하기도 한다. 그렇게 권력과 미리 관계를 맺는다."
- 지역의 정치·행정·문화계·재계·언론계 등에 이르기까지 장악하고 있는 토호세력의 특징은 가족 간 대물림 또는 상호간 혼맥관계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실상은 어느 정도인가?
"부는 당연히 대물림되고 이권과 특혜를 받아내는 수법, 노하우까지도 전수된다. 그리고 행정·정치권력과 결탁하는 것도 모자라 직접 자신이 출마해 단체장이 되거나 시·도의원 또는 국회의원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언론과의 결탁이 아니라 직접 지역신문을 인수해 사주로 군림하며 자기 사업의 방패막이 또는 권력과의 연결고리로 활용한다."
- 전 사회적으로 적폐청산이 진행이 되고 있지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특히 문화·언론·재벌)들의 골 깊은 유착으로 청산작업은 아직도 멀었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으로 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하는지, 대안이 있다면 말해 달라.
"토호세력은 지역언론과 관변단체를 행정권력 및 정치권력과의 연결 통로로 활용한다. 새마을운동, 바르게살기, 자유총연맹 등 3대 관변단체는 거의 모두 이들 토호가 대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단체의 규모는 중앙 조직과 광역시도 조직, 시군구와 읍면동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기 짝이 없다.
알다시피 새마을운동은 박정희가 만든 단체이고, 바르게살기는 전두환이 만든 단체이다. 자유총연맹은 이승만이 만든 준군사 조직 민보단과 대한청년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한청년단은 200만 명의 단원이 전국 읍면동까지 조직체계를 갖춘 이승만 친위조직이었다. 민보단 역시 이승만의 지시로 만든 경찰의 보조단체로 무기까지 소지한 준군사 조직이었다. 이후 이들 단체는 1954년 반공연맹으로 바뀌었다가 1989년 한국자유총연맹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유총연맹은 현재 전국 350만 회원, 17개 시도 지부와 235개 시군구 지부, 3500개 읍면동 지도위원회, 235개 청년회, 235개 부녀회와 460여 특별지부, 130개 대학건전동아리를 거느린 대규모 조직이다. '한국자유총연맹 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간 100억여 원의 예산 지원도 받는다. 사업비 뿐 아니라 조직운영비까지 지원된다.
정부 지원 외에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예산도 어마어마하다. <경남도민일보>가 2017년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228개 기초지자체 등 전국 245개 지자체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전수조사를 한 결과 새마을운동 관련단체(지역별 새마을회, 부녀회, 새마을지도자회 등)가 총 403억 4924만 원, 한국예총이 192억 1186만 원, 바르게살기운동본부가 126억 7404만 원, 한국자유총연맹이 83억 6273만 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 81억 9689만 원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관변단체 육성법을 폐지하지 못했고, 문재인 정부도 못할 것이다. 그만큼 이들 관변단체는 전국에 촘촘히 뿌리박고 있으며, 그런 조직을 토호들이 거의 장악하고 있다.
지역언론 또한 그렇다. 특히 지역신문은 구독자가 너무 적다. 한국ABC의 부수공개 결과에 따르면 전국 100개 지역일간지 가운데 유료독자 1만이 넘는 신문은 26개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실제 광고효과나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도 미비하다. 그런 지역신문일수록 전체 매출액 중 지방자치단체의 광고나 협찬에 의존하는 비율이 60~70% 또는 심할 경우 80~90%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지역신문이 지방자치단체를 시민의 입장에서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들 신문이 망하지 않고 유지되는 이유는 그런 언론을 홍보수단으로 이용하려는 행정권력, 정치권력의 독버섯에 물주기식 지원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토호세력이 그런 언론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을 소유한 토호세력은 망하지 않을 정도의 지원을 하는 대신 신문을 자기 사업의 방패막이나 특혜 이권 챙기기 수단으로 활용한다."
- 지역사회의 적폐청산을 위한 가장 큰 난제는 무엇이며 이에 시민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는 감시해야 할 상대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지역민주주의와 지방자치 실현에 방해세력이 누구인지 피아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지난 2003년 지역 시민단체 주도로 만든 '지방분권운동 경남본부'의 구성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앞서 말한 3대 관변단체 대표들이 이 단체의 공동대표 또는 공동집행위원장으로 되어 있었고, 창원상공회의소 회장도 고문으로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그 상공회의소 회장은 원래 김영삼 정부 시절 신한국당 경남도지부 후원회장을 하다가 김대중 정권으로 교체되자 새정치국민회의 경남 후원회장으로 변신했다. 김대중 정권 말기에는 재집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는지 후원회장직을 사퇴했다가 노무현 정부가 탄생하자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신당추진위 경남 상임고문을 맡았다. 그러다 다시 노무현 정부 말기가 되자 야당인 당시 김태호 경남도지사 쪽에 붙어 정권과 각을 세우는 지역관변단체 공동위원장으로 변신했다.
또한 이런 사람도 있다. 자유총연맹 경남지부장이던 건설업체 회장은 <경남신문>을 인수해 사주가 되었고, 지역기업체를 협박해 비싼 광고를 받아낸 혐의(공갈)로 기소되었다가 신문사 대표직을 물러났지만 한동안 자유총연맹 회장직은 내놓지 않았다. 새마을운동 경남지회장이던 다른 건설업체 사장은 <경남신문> 회장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