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92〉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조각. 〈사진93〉 용(龍) 금문. 〈사진94〉 말(馬) 육서통. 〈사진95〉 천(天) 육서통. 신라와 마한 사람들은 용과 말의 기원을 천문(天門)에서 나오는 ‘구름’에서 찾은 듯싶다. 이는 신라와 마한의 ‘서수형토기’와 황남대총 남·북분에서 나온 말갖춤 무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라 〈천마도〉에 그린 것은 기린(麒麟)이 아니라 말(馬)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도 그렇듯 용과 말의 갑골과 금문을 보면 모두 다 머리는 하늘, 꼬리는 땅 쪽으로 뻗어 있다. 〈사진95〉 천(天)의 육서통을 보면 사람 또한 그 기원을 천문으로 보고 있다. 이는 고구려벽화의 천문과 신라 무덤에서 나오는 그릇과 뼈그릇 천문 무늬를 보면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람이 들판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들판과 강과 구름과 하늘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이와 관련된 글자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다시 말해 고대 중국인이 글자로 그린 '세상'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는 중국 한자를 서양 학자들처럼 상징(symbol, 기호)으로 보고, '상징의 결정체'로 읽는다(55쪽).
하지만 〈사진90-91〉, 〈사진92-95〉를 견주어 보면 한자가 결코 상징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는 그것(그림)을 아직 온전히 읽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빗살무늬를 해석할 때 지금까지 '상징'이란 말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이 무늬는 뭉게구름을 그린 것이다' 했지 '이 무늬는 뭉게구름을 상징한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의 다 뒷말로 읽는 것 같다.
상징(기호, symbol) 또는 추상
러시아 역사학자 리바코프(Rybakov, B 1908∼2001), 미국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Marija Gimbutas 1921∼1994), 러시아 문양학자 아리엘 골란(Ariel Golan 1921∼ )은 그릇 아가리 쪽에 있는 반원·타원 무늬를 '구름'으로 본다. 이것은 아주 정확히 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신석기인이 구름을 '처음에' 왜 반원·타원형으로 그렸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은 고대 무늬에서 곡선이 꺾인 선으로 바뀌듯 반원·타원이 삼각형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 또한 정확하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그들이 신석기 무늬를 볼 때 그 무늬의 내력(또는 실제 대상)을 설명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불충분한 까닭은 신석기인이 그린 무늬를 '상징(기호, symbol)' 또는 '추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상징'을 모르겠으면 '추상'이라 하고, 그 앞에 '기하학'을 붙여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한다. 하지만 세계 신석기인이 그릇에 일부러 '추상 무늬'를 새겼을 리 없고, 더구나 이 무늬는 '기하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실 '기하학적 추상무늬'란 말은 'I don't know!'와 같은 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원전 9천년부터 1천년까지 한반도 신석기인이 빚었던 빗살무늬토기 무늬를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하고, 그 시대를 '빗살무늬토기 문화'라 해왔다(국립중앙박물관 도록, 2005). 이 말은 우리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8천 년 남짓 기하학적 추상 무늬를 새기고, '추상 미술'을 해왔다는 말이다.
나는 서구 문양학자들과 달리 세계 신석기인이 새긴 무늬는 실제 대상에서 왔고, 직선으로 바뀌는 것 또한 실제 대상과 닮은 어떤 구상과 작업 과정에서 왔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무늬의 상징이 아니라 그 무늬의 '구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