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와 경향 보도 제목. 광주형 일자리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지면기사 기준(12/5)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잠정 합의안이 나온 5일 한겨레는 <'광주형 일자리' 잠정 타결…고용창출 대타협 첫발>(12/5 정대하 기자) <임금 낮추고 일자리 늘리는 '광주형 상생 실험' 본격 시동>(이어지는 기사) 지면기사 에서 "지방정부 주도의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적정 임금의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어내려는 실험이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경향신문도 <광주형 일자리 사실상 타결 1만2천여명 고용 창출 기대>(12/5 강현석 배명재 기자) <'적정임금' 통한 일자리 창출, 한국 노동시장의 새 대안 될까>(12/5 강현석 기자)라고 전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고용창출' '일자리 늘리는' '고용창출 기대' '일자리 창출' 등 광주형 일자리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데 힘을 줬습니다. 내용에서도 밝은 미래를 전망했습니다.
우려되는 지점을 언급한 대목도 있지만, 그야말로 짤막합니다. 이 정도로는 '광주형 일자리'가 가져올 완성차 시장의 붕괴와 임금 하향 평준화, 지역임금 갈등 등 노동계의 지적을 제대로 짚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일각에서 "신설법인 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인 경차 SUV의 판매가 부진할 경우 광주시가 우회 투자한 590억원과 금융권에서 끌어들일 4200억 원의 투자가 고스란히 시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략)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이날 긴급성명서를 내어 "광주형 일자리는 자동차 산업 시설이 남아도는 탓에 과잉중복 투자로 모두가 함께 망하는 길" "자동차 산업에 위기와 파탄을 가져올 광주형 일자리가 합의된다면 총파업을 감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겨레 <'광주형 일자리' 잠정 타결…고용창출 대타협 첫발>(12/5) 중)
민주노총도 "광주형 일자리는 현대차의 저임금 하청공장에 불과하다"면서 "재앙을 불러올 실패한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향신문 <'적정임금' 통한 일자리 창출, 한국 노동시장의 새 대안 될까>(12/5) 중)
소형 자동차 시장 포화 상태인데… 치킨게임으로 임금 하락
노동계가 우려하는 점은 '과당 경쟁으로 인한 노동조건 하향평준화'입니다. 현대자동차와 광주시는 이 사업을 통해 연 7~10만대의 경형 SUV(코드명 QX, 소형SUV인 현대자동차 코나보다 작은 크기. 2019년 공개 예정)를 생산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경차‧소형SUV 시장은 포화 상태입니다.
연합뉴스 <쪼그라드는 경차 시장…월 판매량 20개월째 감소>(9/16)에 따르면, 국내 경차 판매량은 해마다 줄어 지난해 13만 8천895대를 기록했고, 소형 SUV 판매량은 14만 7천429대였습니다. 그런데 서울경제 <현대차 "야심작 '소형SUV QX' 8만대 팔겠다">(10/24)에서 현대자동차는 내년 1월부터 울산3공장에서 '코드명 QX' 경형 SUV를 연간 7~8만대를 생산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광주 공장에서 같은 모델인 '코드명 QX' 7~10만대의 물량이 추가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소형 SUV가 상승세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울산 공장'과 '광주형 일자리 공장' 간의 '제 살 깎기' 경쟁으로 이어져 노동자 임금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공장 간‧지역 간 경쟁이 심화되면 대규모 구조조정과 노조 무력화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노동계는 현대자동차의 '노림수'가 바로 이 '치킨게임'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방식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면 전체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 하락‧노조 무력화‧구조조정 등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성명/광주형 일자리 졸속추진을 중단하라>(10/30)에서 "광주형 일자리는 일자리 창출보다 또 다른 구조조정과 저임금구조양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과잉중복투자… 자동차 산업 붕괴 우려
'과잉중복투자' 비판도 제기됩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투자되는 자금은 중앙정부 지원금까지 합쳐 1조원에 육박합니다. 그런데 미래 자동차 산업인 전기차 또는 수소차가 아니라 경형 SUV 자동차에 1조원을 투자를 하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하부영 금속노조현대자동차지부 지부장은 지난달 28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문화회관에서 열렸던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국내생산 55만대 감소, 현대차 25만대 감소,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등 시설이 남아돈다 (중략) 중복과잉투자를 불어오는 '광주형 일자리'는 한국자동차산업 몰락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울산저널 <김종훈 의원 "자동차산업 고사시키는 일자리 중단해야>(12/6 이종호 기자)에서도 "또 다시 자동차 과잉중복생산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사태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광주형 일자리 재검토를 요구한 김종훈 국회의원(민중당/일산동구)의 기자회견을 전했습니다. 지난 1997년 IMF 사태의 원인이 재벌들의 과잉투자와 공급과잉에서 발생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기업의 과잉중복투자가 어떤 재앙으로 이어질지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노동계가 정말 '노․사․민․정협의체'에 참여했나?
한편 대부분의 신문이 '노동계'가 노‧사‧민‧정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서술하지만, 이는 중요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절반의 사실입니다.
한겨레는 <뜻깊은 '광주형 일자리' 타결을 환영한다>(12/5)에서 "지역 노동계 광주시에 전권 위임 물꼬"라고 전했습니다. 한겨레 <초봉 3500만원‧주44시간 광주형 일자리, 상생 디딤돌 될까>(12/4 정대한 신동명 기자)(지면기사 제목은 <임금 낮추고 일자리 늘리는 '광주형 상생 실험' 본격 시동>)에서도 "이번 잠정 협상 타결은 지방정부 최초로 노·사·민·정 대타협을 끌어낸 일자리 창출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노동계' 전체가 합의한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경향신문도 <광주형 일자리 사실상 타결 1만2천여명 고용 창출 기대>(12/5 강현석 배명재 기자)에서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가 긴 협상 끝에 노사민정 대타협을 기본정신으로 하는 광주형 일자리 자동차공장 설립에 합의했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로 '노‧사‧민‧정 대타헙'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노‧사‧민‧정협의체에 참여한 곳은 한국노총뿐입니다. 민주노총은 협상 테이블에 앉은 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한국노총에는 완성차 업체 노조가 없습니다. 완성차 노조는 모두 민주노총 소속인데, 완성차 사업을 협상하는 테이블에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것이죠. 그렇다면 이는 사실상 절반의 의견도 아니고 '완성차 업체 노동계'의 의견은 반영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언론이 '노동계'가 대화에 참여해서 타협을 했다는 식으로 서술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노사 책임 경영‧원하청 관계 개선 논의는 실종…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중요한 핵심 의제인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논의는 실종된 상태입니다. 2017년 사회협약으로 체결된 광주형 일자리 조례에서 "광주형일자리 구현을 위해 필요한 의제는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관계개선"이라고 규정했습니다.(광주광역시 광주형일자리 촉진에 관한 조례)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논의는 '적정임금'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언론에서 연일 노동계, 특히 대기업-정규직 노조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노조가 양보해 일자리를 만든다'는 프레임에 갇힌 겁니다. 그러나 대기업-정규직 노동조합이 실업난과 임금격차의 원흉은 아닐 것입니다.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하려면 불합리한 원하청 구조를 개선하고 노동 존중 사회로 가는 제도 도입도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지면기사에서 '노사 책임 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관련된 내용은 다룬 건 중앙일보의 짤막한 한 문장이 전부였습니다. 관련 기사가 경향 9건, 한겨레 7건, 중앙 6건, 서울 6건, 동아 3건에 비하면 관심이 매우 적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