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강도 강화 없는,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유통업 노동자들에겐 절실하다 (이미지 브랜드는 본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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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판매직의 경우, 이전에는 개별 운영되던 두 개 이상의 브랜드가 하나의 매장으로 통합·운영되는 멀티매장이 확대되고 있다.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급여 수준을 보장해야 하므로 인건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기업에서 이를 대비해 인원을 줄이는 구조조정 방식이라 볼 수 있다. 각 브랜드당 5명이 일했다면 두 브랜드가 합쳐진 멀티매장에서는 6명이면 가능하다. 인원의 감축과 함께 정규직을 파견직으로 대체하는 경향도 있다."
멀티매장의 확대와 함께 의무시차제 역시 대표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의 부정적 결과로 꼽힌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형태인 의무시차제도는 연장근로로 이루어진 초과 노동시간을 늦은 출근이나 이른 퇴근 등으로 삭제하는 형식으로, 고정연장근로 수당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되었다.
의무적으로 몇 회의 시차를 쓰도록 강제하는 의무시차 제도가 확대되면 쉬지 않는 노동자들의 업무량이 많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고객응대서비스라는 업무의 특성상 노동 강도가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의무시차 제도를 둘러싸고 L 기업 노조는 의무시차의 강제적 사용 횟수를 늘리고자 하는 사측과 갈등 중에 있다.
이러한 변형적 근로시간제는 저임금과 맞물려 있어, 많은 유통업 노동자들은 임금 보전 없이 이뤄지는 노동시간 조정에 의해 생계가 어려워지는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영업·판매직의 경우 연장근로 수당은 전체 임금의 15~20%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율이다. 대표적 저임금 업종인 유통업은 기본급도 최저임금 수준으로 낮은 데다 연장근로 수당의 비율이 높다보니 이를 시차제로 상쇄하거나 연장근로 시간자체를 줄이면 이는 바로 임금 하락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몇 사업장에서는 연장근무를 제한하고자 하는 사측에 반해 현장의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연장을 원하는 역설적 상황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삶의 질 개선이 목적인 노동시간 단축이 임금구조의 개선과 함께 논의되지 않는다면 그 의의가 퇴색될 것이라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이유이다.
저임금 구조와 불안정 노동으로 성장하는 기업
근로기준법 개정 이전부터 일부 대형마트는 이미 35시간제 도입을 했거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해 본사에서 일하는 정규직 직원들과 같이 퇴근 시간이 앞당겨져 높아진 삶의 질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일부의 특정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일 뿐, 비정규 노동, 단기 노동이 많은 판매직의 경우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정민정 마트노조 사무처장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저하와 노동강도 강화는 유독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 폭력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트노조는 늘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노동시간 단축에 동의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시간 단축이 왜 유독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에게 더 집중이 되는가이다. 인력충원 없이 이루어진 노동시간만 단축되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같은 양의 업무를 더 짧은 시간에 해야 하는 셈인데, 이런 변화를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들은 마트 인력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저임금,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이다. 8시간에 김밥 500개 말던 사람이 7시간에도 김밥 500개를 말고 있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나온다."
실제로, 대형마트의 한 브랜드는 개장 한지 2년 만에 219개로 매장 개수가 증가했다. 이 브랜드의 매장들은 1년 이상 계약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고용하는데, 이들은 캐셔(Cashier)부터 진열까지 다양한 업무를 감당하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매장이 운영되는 셈이다.
"원래 관리자라 불리는 정규직 직원들과, 대부분의 판매 일을 하는 비정규직과 그 외의 스태프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정규직 숫자를 대폭 줄이며 업무를 통합시켜 이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본인들의 일이 아닌 회계업무와 스태프 관리까지 하고 있다."
이 대형마트가 브랜드 사업을 파격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단기계약직 인건비를 낮춰 이윤을 높이는 전략을 취한 덕에 가능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백화점의 경우도 구조적인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를 안고 있다. 주로 백화점 2층 이상의 의류, 가구, 가전, 스포츠·생활매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근로계약 체결 없이 보통 사적인 경로를 통해 들어와 일하다가 그만 두고 옮겨 다니는 임시직 노동자들로, 노동시간이나 임금 문제에 있어서 노동법의 완전한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에서도 이들의 노동시간 문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의무휴업제 도입으로 높아진 삶의 질을!
이렇게 고질적 저임금 구조를 가진 유통업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반기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본능에서 나오는 당연한 반응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유통업 노조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근로시간 변형과 변칙적 임금구조에 맞서 어떠한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물론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현재 유통업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탄력적 노동시간제, 포괄임금 등 변칙적 근무제도 도입을 제한하고, 임금구조가 개선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더해 하인주 로레알코리아 노조위원장과 이성종 정책실장은 영업시간 총량제를 도입해서 사람들의 건강권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강조한다.
"삶의 질이 높아지려면 의무휴업이 필요하다. 누군가 나와서 매장을 열고 일을 하기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다. 쉬는 날 sns를 통한 업무지시로 휴무의 의미가 없어진다. 어떤 대형마트는 회사 어플을 만들어 그 어플로 업무 지시가 오고 알람이 뜬다. 이런 일을 못하게 하고, 전 직원이 제대로 쉬게 해야 이런 일이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