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조지 부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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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정일 답방 불발이 오로지 미국 때문만은 아니었다. 북미관계가 최대 요인이었지만, 그것이 유일한 요인은 아니었다. 앞에서 "지금이나 그때나, 북한 지도자의 서울 방문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공통 요인이 있다"고 했다. 북미관계에 이은 두 번째 요인은 남한 정부의 의지와 역량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 점도 서울 답방을 결정하는 요인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북한의 최대 현안은 북미관계와 더불어 경제 문제다. 이 두 가지는 어찌 보면 한 가지 문제다. 북한이 북미관계 정상화에 집착하는 것은, 한국전쟁 이후 계속되는 경제 봉쇄를 풀기 위해서다. 이 봉쇄를 풀지 않으면, 동아시아에서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로, 동아시아에서 말라카해협 및 인도양을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이용할 수 없다. 바닷길이 세계 교역을 좌우하는 시대에 북한 무역선이 바닷길을 마음대로 다니는 방법은 미국의 봉쇄를 푸는 것뿐이다.
이처럼 북한이 경제 문제에 목숨을 걸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한국 정부가 남북경제협력의 비전을 좀 더 확실히 보여줬다면, 김정일의 서울 답방이 좀 더 가시권에 다가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 및 보수진영과의 갈등을 각오하고서라도 남북경협을 과감히 추진했다면, 서울에 오고 싶어하는 강렬한 열망이 북한 지도부 내에 생겼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시 우리 정부의 문제점이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2001년 7월호 월간 <말>에 기고한 '누가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가로막는가'에도 언급됐다. 강 교수는 "뭐니 뭐니 해도 남북정상회담을 가로막는 제1의 훼방꾼은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라고 하면서도, 김대중 정부한테도 문제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가 김정일의 답방을 열심히 촉구하기는 하지만, 답방을 가능케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는 무기력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그렇게 절실히 남북협력의 중점 사업으로 설정했던 전력지원 문제는 남한 내 냉전 수구세력에 의해 발목이 잡히고, 다시 미국에 의해 결정적인 제동이 걸렸다. 남북협력으로 경제를 복구, 장기적 경제 생존권을 확보한다는 북의 청사진이 심대한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한이 미국이라는 외세에 대해 어느 정도 자주성을 가지고 남북공조를 통해 이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이 있다면, 북한도 기꺼이 조기 정상회담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 이후 남한의 무기력함은 이를 기대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남한 내부 사정 또한 우호적이지 않다. 김대중 정부의 인기도는 바닥에 떨어져 벌써 권력 누수현상이 나타나고, 대북 적대정책을 공공연히 표명하는 주류 언론과 야당이 미국의 적대정책에 부화뇌동하여 더욱 기승을 떨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랜 시련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한 훌륭한 인격자이지만, 그의 정부는 아들 부시한테 'This man' 소리를 들은 뒤로 현저하게 과감성을 잃었다. 북한 입장에서는 그런 한국 정부가 미국과 보수진영의 훼방을 물리치고 남북경협을 끝까지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에 더해, 김대중 정부의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가 김정일 답방을 막은, 부차적이지만 또 다른 요인이었던 것이다.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호전돼 있다. 김정은을 로켓맨으로 불렀던 트럼프도 '알고 보니 괜찮은 사람'이라며 태도를 바꿨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제사회를 상대로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그래서 북한 지도자의 서울 답방 가능성이 2000년 무렵보다는 훨씬 높아져 있다.
하지만 서울 답방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김대중 대통령의 바람처럼 정례화되려면, 그렇게 해서 한반도가 안정되고 한국 경제의 신뢰도가 높아지려면, 그 두 가지 요건에 모두 다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북미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에 너무 의존하는 나라로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지긋지긋한 대미 사대주의의 잔재를 말끔히 지워버리고 우리 스스로의 필요와 의지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것이다.
트럼프가 고래고래 고함치며 서울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한다 할지라도 이에 개의치 않고 남북협력을 밀어붙일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매번 북한은 서울 답방을 앞두고 오랜 저울질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관계 진전도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힘쓰며 가는 게 아니라 즐겁고 편안하게 남북정상회담을 기다릴 수 있으려면, 미국과 보수진영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자기 입장과 자기 역량에 의존하는 당당한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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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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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답방' 원한다면, 두 가지만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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