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후보 유세금지 조항으로 인해 명함을 건네주는 선거운동이 비례후보 선거운동의 주를 이룬다.
조준기
그럼 본 선거운동 기간에 비례후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엔 후보 본인만 어깨띠를 매고 명함을 나눠줄 수 있다(명함 규격, 내용 등도 엄격히 제한돼 있다).
거리에서 이야기를 할 때 마이크를 쓸 수 없고, 지역구 후보자가 있는 곳에서만 지역구 후보자의 연설원으로 등록해 마이크로 지지연설을 할 수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제한을 둔 것일까? 후보자가 왜 출마했는지,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지 사람들에게 성심성의껏 알리고 소통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선거법이어야하지 않을까?
지역구 후보자를 많이 내지 못하는 소수정당 후보의 연설 기회를 줄어들게 해 후보자의 공무담임권(여러 가지 선거에 입후보해서 당선될 수 있는 피선거권과 국정과 관계되는 모든 공직에 임명될 수 있는 공직취임권을 포괄한다)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거리에 현수막을 거는 것도 불가능하고(지역구 후보 것만 가능하다), 방송 차량도 못 쓴다. 방송 차량을 쓰고 싶지도, 쓸 돈도 없었지만 애초에 기회를 박탈당하니 당황스러웠다(게릴라 콘서트만도 못 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봐도 공직선거법상 금지. 상상력의 한계를 원망하다가 이건 개개인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제도적 한계임을 절감했다.
이게 바로 현행 한국 선거법의 핵심인 것을 간파해버렸다. 후보가 아닐 때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 보였다.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하고자 하면 손발이 묶이는 시스템이다. 마땅한 이유도, 납득할만한 유래도 없는 공직선거법의 악마 같은 디테일들은 누가 언제 만든 것일까?
기탁금 제도만 본다면 1958년, 그러니까 60년 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꾀하면서 만든 것을 4.19 혁명 이후 폐지했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반대세력 출마를 막기 위해 부활시킨 역사가 있다. 그리고 여태껏 여러 독소조항들이 1987년 혁명 이후에도 2016년 촛불혁명 이후에도 기득권 정치세력들에 의해 돈독히 지켜지고 있다.
"아니 그럼 비례후보는 선거 운동을 어떻게 해요?"라고 처음 선거법 교육받을 때 했던 질문을 다시 던져보고, "하지 말란 거지"라는 답을 얻었다.
지역구 후보와 비례후보 통틀어 전국에 딱 10명뿐이었던 녹색당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활동이 중요했다. 뭘 해야 할까. 온갖 꼼수를 생각해보지만 쉽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비례후보는 지역 유세시 '마이크'를 쓸 수 없고 오직 '생목'으로만 하라는 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엽기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비례후보가 마이크를 사용해서 거리 연설을 하게 되면 어떤 무서운 일이 생기는 것일까. 단골 카페 사장님은 이 기회에 산에 가서 득음하고 오라는 농담을 건넸다. 고향에서 보내준 도라지배즙을 부지런히 먹고 있었지만 무리였다. 지금까지 다른 정당 비례후보들은 선거운동을 어떻게 한 건지, 하기는 한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