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진주문고에서 열린 고 허수경 시인 추모 행사에 고인이 낸 책들이 놓여 있다.
성순옥
고인의 후배 성순옥(터울시조문학회)씨는 "수경 선배에게 띄우는 편지"에서 "선배, 32년 전 선배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가좌동 어느 강의실에서 시인을 꿈꾼 한 국문학도가 있었다. <땡볕>이라는 시를 듣고 <스승의 구두>라는 시를 읽고, 찻집 '아란야'에서 천 개의 언어로 달군 눈빛으로 마주했던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그 작은 몸에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시, 진주노래, 어둡고 쓸쓸한 저자거리 같은 슬픔도 가슴에 닿으면 꿈틀대는 선배의 언어. 그 노래들을 살아있는 선배 음성으로 듣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선배의 시집이 나올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사고 읽고, 계간지에 실린 선배 글을 볼 때마다 늘 반가움에 책갈피를 꽂았더랬다. 한번쯤 문학강연하러 오지 않을까? 기다렸다"고 했다.
성씨는 "먼 서역 만리 독일 뮌스터에서 낯설은 공부를 하러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참으로 독하다, 글쟁이가 모국어를 어찌 삭이고 살까? 외롭고 두렵고 배 고프고 육신이 고달파 어찌 할꼬? 여겼는데 모질게도 참 잘 버티어섰더군요"라며 "폐병쟁이 사내를 살려내고픈 그 마음으로 낯선 도시를 살아낸 선배"라고 했다.
또 그는 "30여년 시인으로, 여행자로, 학생으로, 고고학자로 살아온 사람. 우리 언어로, 심장으로 사람들이 버리고 사랑한 도시를 노래한 사람으로 기억하고픈 선배. 한번쯤 진주꽃밥을 먹으러 왔으면 싶었던 선배"라며 "분노도 서툴고 깨뜨림도 서툰 우리를 다그치어 한 껍질 부서지게 해주었으면 했던 선배"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가 선배를 마주하는 시간이 추모가 아니라 영원한 기억이기를. 어떤 땅은 하늘로 올라가고 어떤 땅은 땅으로 떨어진다죠? 늘 낯선 것들과 덜거덕거리며 그러다 환희로 평정되는 청동의 시간대. 잘 가요, 선배. 이제 선배 시간과 도시로. 그곳이 어디든"이라며 인사했다.
허수경 시인은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냈고,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와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박하>와 <아틀란티스야, 잘 가>, <모래도시>, 동화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와 <마루호리의 비밀>, 번역서 <슬픈 란돌린>과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형제 동화집>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