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수 프리드라이프 한국장례문화연구원장국립고궁박물관장과 국립춘천박물관장을 거쳐 현재는 문화재청 무형분과 문화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황상윤
이에 대해 국립고궁박물관장을 지낸 정종수 프리드라이프 한국장례문화연구원장은 "시대에 따라 문화가 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잘못된 문화가 마치 전통인 양 자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30여 년간 상·장례를 연구해온 정종수 원장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대표적인 장례 문화가 삼베수의라고 했다. 예전에는 상주가 죄인이라는 인식이 있어 그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입었던 것이 남루하고 거친 소재의 삼베옷이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1934년 의례준칙을 통해 명주나 비단이었던 수의를 상주가 입던 삼베로 바꿨다.
정 원장은 또 하나 잘못된 장례문화가 검은 양복과 상주의 완장이라며 검은 양복은 서양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화복이 되고 여기에 완장문화가 겹쳐진 국적 불명의 형식이 지금 우리 전통으로 잘못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거친 삼베는 부모에게 입히고 상주는 깔끔한 정장과 완장을 차게하는 것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정종수 원장은 시대가 변하면 문화는 변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전통은 누군가는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례는 학계에서도 인기가 없는 분야라 연구자가 많지 않다며 실제로 서점에 가보면 상·장례와 관련된 단행본을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정 원장은 요즘 한 상조회사가 장례식장마다 만들고 있는 장례전시관을 통해 상·장례 문화를 알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에게 주어진 공간은 22㎡(6.5평)와 40㎡(12평)였지만 이 작은 전시관을 만드는데도 전 문화재청장, 고고학자, 미술사 전공자 등 최고 전문가들을 심의위원으로 초빙해 유물선정과 조언을 받았다.
규모는 작지만 내용 면에서는 어떤 박물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정 원장의 설명이다.
정 원장은 요즘 장례식을 보면 뭔가에 쫓기듯 치르기에 급급한 것 같다며 망자에 대한 마지막 예는 갖췄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라며 특히 노숙자나 종로 고시원 희생자처럼 가족이 없거나 어려운 분들을 떠나보낼 때는 더 예를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정종수 원장과 22일 인천 쉴낙원 한국장례문화전시관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 상·장례의 정의가 뭔가요?
"원래는 장례하고 상례가 있는데 장례는 시신을 관에 넣어서 땅에 묻는 과정까지를 장례라고 해요. 상례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수의를 입혀서 땅에 묻고 탈상해서 상주가 상복을 벗을 때까지의 기간이에요. 그것이 삼년상이죠. 장례는 상례 속 일부분이에요. 요즘 상례는 거의 없어졌어요. 삼년상을 하는 곳도 없고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지금은 변형된 장례풍습만 남아있는 것이죠."
- 장례문화연구를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 들어간 후 (학위)전공을 정해야 하는데 남이 안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장례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전공을 정하고 보니까 너무 범위가 넓고 어려운 거예요. 그래도 이 분야는 남들이 하지 않으니까 내가 하면 훨씬 앞설 것 같아서 하게 된 것이죠."
- 장례를 공부하는 학자가 많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사실 '장례를 전공한다.' 이렇게 연구한다고 내놓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최근 들어 왕실문화연구가 전보다 활발해지면서 왕실의 국장 등이 조금씩 다뤄지고 있는 수준입니다. 서점에 가서 봐도 장례문화에 대한 단행본은 거의 없어요. 그 이야기는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적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장례·상례를 공부해서는 취직이 잘 안 된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