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 어록 <물이 되어라, 친구여> 표지
필로소픽
825개로 정리한 이소룡의 아포리즘 <물이 되어라, 친구여>
대학 시절 철학을 전공했던 이소룡은 서재에 동서고금의 다양한 철학 서적을 쌓아놓고 틈날 때마다 읽었다고 한다. 이소룡에게 철학은 육체적 한계를 넘어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삶을 살아갈 의지를 북돋워준 심신수양의 수단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남긴 어록들을 보면 위대한 철학자들의 명언을 인용한 경우가 많다.
<물이 되어라, 친구여>는 이소룡이 어린 시절부터 쓴 친필 일기와 강의 노트, 독서 중에 틈틈이 책 귀퉁이에 남긴 단상들, 지인들과 나눈 편지, 기자와의 인터뷰 등 생전에 이소룡이 남긴 말과 글을 825개의 아포리즘(격언)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책 속에서 이소룡은 삶, 죽음, 인간, 무위, 진리, 시간, 의지, 성공, 자아실현 등 다소 무거운 주제들부터 시작해서 건강, 연애, 사랑, 결혼, 육아, 예술 등 일상의 소소하고 가벼운 주제들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각 주제들을 통해 우리는 이소룡이 서른두 해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견지했던 삶의 원칙들을 엿볼 수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소룡이 시련과 역경을 마주했을 때 어떤 삶의 원칙을 가지고 그것들을 극복해 나갔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어록들이 가득하다. 제목인 "물이 되어라, 친구여(Be Water, My Friend)"라는 구절 역시 이소룡이 생전에 인터뷰나 작품에서 즐겨 인용한 구절이다. 형체가 없이 부드러운 물처럼 우리의 삶 역시 부드럽고 유연해야 한다는 뜻이다.
"환경 탓이라고? 허튼소리! 환경은 나 스스로 만드는 거야!" - p.10
"나만큼 직업이 불안정한 사람이 또 있을까? 내 직업이 뭔지 아는가? 나는 등이 아파 1년 동안 아주 고생했다. 하지만 모든 역경 뒤에는 축복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때로는 그런 충격이 일상의 진부함에 빠지지 않도록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p.186
이소룡과 대화하듯 편안하게 읽는 책
아포리즘은 이소룡이 제자들을 지도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이소룡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철학적 아포리즘을 화두로 던지면서 그것을 힌트삼아 제자들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했다.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제자들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의 제자들은 이소룡을 단순한 무술 스승이 아닌 인생의 스승으로 회고한다.
<물이 되어라, 친구여> 역시 독자들에게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쩌면 읽으면서 알쏭달쏭한 말들도 많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소룡이 원했던 방식이다. 읽는 이들 스스로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저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나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국 나중에는 이 책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진리의 추구는 외부의 권위나 견해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이 아닌, 저마다 스스로 찾아나서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이소룡의 가르침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그저 이소룡과 편안하게 대화를 하며 그 대화 속에서 나의 고민을 풀어줄 힌트를 찾는다고 생각하며 읽으면 족하다.
"진리를 추구할 때는 독립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결코 다른 사람의 견해나 책에 의존하지 마라." - p.18
"이 책에 담긴 문장들은 기껏해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신경쓰거나 손가락에 시선을 집중하지 마라. 그러면 하늘의 아름다운 모습을 놓칠 것이다. 손가락의 용도는 그 손가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과 모든 것을 비추는 빛을 가리키는 것이다." - p.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