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59조는 무제한 노동을 가능케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주 52시간 근무는 기업 규모에 따라 내년 7월부터 단계별 적용되기 때문에,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만 2019년 7월 1일부터 주52시간 상한제(주40시간+연장12시간)가 시행되고 2021년이 되어야 전 사업장에 적용이 된다. 2017년 12월 기준 300인 이상 사업장의 버스 노동자는 3만 9797명으로 전체 버스 노동자의 약 40%를 차지한다. 전체 10만 명 가량의 버스 노동자 중 60%인 6만 명의 노동자는 2020년 7월이 지나야 주 52시간 상한제의 영향권에 들게 된다.
정찬무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국장은 "적용이 미뤄지는 동안 버스운전노동자들은 격일제(하루 근무, 하루 휴무), 복격일제(이틀 근무, 하루 휴무)라는 왜곡된 교대제 근무를 지속해야 한다"며 "격일제 운전에서는 하루 16~17시간, 복격일제 운전에서는 이런 장시간 운전을 이틀 연달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농어촌, 시외버스는 95% 이상 복격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회사가 격일제, 복격일제 교대근무를 고집하는 이유는 1일 2교대제에 비해 운전 노동자를 덜 고용해도 되기 때문이다. 1일 2교대제를 할 경우 버스 한 대당 운전 노동자가 2.34~2.77명이 필요한데, 복격일제에서는 1대당 1.52~1.79명이면 운행이 가능하다.
인력 확충 없어 '대체근무 짬짜미'
당장 교대제를 개선하지 않더라도, 현행 장시간 노동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려면 인력 충원은 필수적이다. 정찬무 조직쟁의국장은 "현행 초과 노동시간을 월 226시간으로 기계적으로 나누어 봐도, 운전자는 지금보다 8% 이상, 6천명 이상 증가돼야 한다. 그러나 지난 2017년 8월에 비해 2018년 8월 전국의 버스 운전자는 2천 4백명 증가했다. 이것도 잇단 사고로 문제가 됐던 경기지역에서 800명 증가한 걸 제외하면 노동시간 단축의 영향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버스사업주는 지금까지 사실상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한 아무런 자구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현장에서 일하는 엄도영 지회장과 이정수 사무국장 모두 "그 전과 변화된 점이 거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일 만하다. 특례 적용에서 벗어나면서 주 68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들긴 했고, 이로 인해 임금도 일부 줄어들었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인력 충원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거나 연차를 써야 할 때 대체근무자가 절대 부족하다.
그럴 때는 기사들끼리 짬짜미형식으로 대체 운행자를 구한다. 이런 일은 버스 사업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A가 운전하는 것으로 운행일지에는 기록되지만, 사실은 서류상 휴일로 돼 있는 B노동자가 운전한다. 대신 A노동자가 B노동자에게 하루 일당과 약간의 웃돈을 주고 대신 운행을 부탁한다. 만근을 채워야 발생하는 수당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런 거래가 가능하다.
B가 쉬어야 할 날 운행하고, 다음 날 다시 C노동자에게 대체 운행을 부탁한다하더라도, 결국 누군가는 근무와 근무 사이의 11시간 연속 휴게를 지키지 못 하고 운행에 나서야 한다. 한 마디로 회사가 노동자를 추가 채용해야 하는 부담을 노동자끼리 주고 받는 가운데, 장시간 노동이 온존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에서 노동자끼리의 이런 거래를 눈감는 이유다.
노동시간 단축과 안전한 버스 만들 계기로
그런데 지난 5월 31일 버스 노동조합 중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은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노사정 선언문'을 통해 '2019년 6월 30일까지 근로기준 및 조건들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운영되는데 협력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현재 상황에서 탄력근무제가 확대된다면 버스현장에서 필요인력 충원을 회피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커지게 된다. 격일제/복격일제 사업장에서는 충분히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공통된 우려다. '과로버스'로 문제가 됐던 16~18시간 운전이 '탄력근로'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 지급되던 연장근무 수당마저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도 법 문구 상에는 탄력근로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기존의 임금 수준이 낮아지지 아니하도록 임금보전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여하고 있지만, 이를 준수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가뜩이나 낮은 버스운전노동자들의 임금도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