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간정사지금의 남간정사는 연못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김종길
지금의 남간정사는 연못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예전에도 그랬을까. 문득 남간정사의 원래 모습이 궁금하다. 우선 송시열이 어떤 인물인지, 그가 어떻게 남간정사를 조영했는지 그 원리를 알 필요가 있다. 또한, 송시열 사후에 남간정사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그 원형과 내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인물, 송시열
송시열만큼 우리 역사에서 주목받은 인물이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 이상이나 나올 정도로 가장 많이 이름을 올렸던 인물, 네 분의 임금이 56년간 167번을 불렀으나 이에 응한 것이 37번이었던 인물, 정승을 세 번이나 했으나 그 직을 수행한 건 불과 47일에 불과했던 인물, 동국 18현의 한 사람으로 '동방의 주자'로 칭송되는가 하면 '당쟁의 화신'으로 비난받았던 인물, 후학들에 의해 주자(朱子)에 버금가는 성인군자의 반열인 '송자(宋子)'라는 존칭을 받았던 인물….
송시열의 문집 또한 왕명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전(大全)'이라 불린 <송자대전>이었다. 그는 조선 시대 최대 격변기였던 17세기 이후 학계와 정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대학자이며 정치가이다. 범인들이 넘볼 수 없는 위상과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인물이 바로 송시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