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표지.
착한책가게
기존의 국가 중심 복지 서비스는 복합적인 개개인의 욕구에 기반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실패해왔다. 또한 부족한 복지 인프라를 확충한다는 명목하에 민간 시설의 무분별한 난립을 허용하고 공공적인 감독이 책임을 소홀히 함으로써 복지 상업화의 길을 터주었다. 유치원 비리 못지 않게 터져 나오는 요양병원이나 장기요양기관들의 비리 사태가 그 후과를 여실히 드러낸다.
국가 복지의 한계와 복지의 시장화를 모두 경계하면서 지역사회 전체에 사회적 돌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협동조합이 바로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케나다의 세계 협동경제 연구자인 존 레스타키스는 책 <협동조합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에서 "협동조합 부문에서 사회적협동조합의 등장은 지난 30년간 이루어진 활동 가운데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146쪽)라고 했다.
1979년 장애인 도우미들과 장애인 가족들이 설립한 이탈리아의 사회적협동조합인 '코팝스'는 복지 프로그램의 내용과 설계, 영리활동의 개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결정을 구성원들이 직접 한다. 코팝스는 볼로냐 시당국과의 교섭을 통해 장애인 프로그램 운영 계약을 체결하고 수행중이다. 볼로냐의 경우 도시 사회서비스의 87%가 사회적협동조합을 통해 제공될 정도로, 사회적협동조합들은 이탈리아 사회서비스 체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저자는 "사회적협동조합들의 등장은 공공, 민간 및 상업 영역간의 경계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영역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며 "이 협동조합들은 정부와 시장 시스템에 대한 대안으로서 시민사회의 힘과 가치를 담은 돌봄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156쪽)고 설명한다.
"사회적 돌봄에서 호혜는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 정보, 책임 및 권력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혜는 이용자에게는 자존감의 근원이고, 도우미에는 업무만족감의 근원이며, 서로가 함께 책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다.
평등에 기초한 권력의 공유와 관계 재정립을 통한 돌봄의 민주화를 이루지 않고서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제공자와 이용자가 권력을 공유하는 협동조합 구조다." (160쪽)
"의료서비스와 사회적 돌봄의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사람들의 실제 욕구와 선호를 존중하는 시스템을 원한다면 민영화나 기존의 정부 서비스 가운데 양자택일이 아닌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의료 및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 모델은 공공서비스의 장점에 민간서비스의 장점인 선택권과 이용자 욕구에 대한 기반한 대응력까지 갖춘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낮은 비용에 제공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165쪽)
이탈리아에는 전국적으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의 수가 1만 4천개에 이른다. 이탈리아 법조문에 기술되어 있는 것처럼 사회적협동조합의 목적은 '인간에 대한 배려를 촉진하고 주민을 통합함으로써 전반적인 지역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157쪽)이다. 이탈리아의 법률은 '공공복지 증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당국과 사회적협동조합과의 협업과 공생을 강조한다.
일본의 사례도 주목할만 하다. 일본 전역 47개 현마다 지부를 두고 있는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조합원 수가 10만 명에 이른다. 이 협동조합은 어르신들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자기 집에 머물면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이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좀 더 건강한 노인이 다른 노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도 창출한다. 이처럼 일본의 협동조합은 고령사회 노인 문제에 대응하는 필수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돌봄 민주주의 시대에 관한 희망
"조합원의 통제와 소유는 협동조합의 조직문화와 운영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다. 서비스 이용자가 조합원이기도 한 사회적협동조합에서 통제권의 운영은 이용자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돌봄을 받는 수혜자이자 돌봄 체계의 '객체'에서 돌봄의 설계 및 전달의 주인공이자 돌봄 관계의 적극적인 '주체'로 탈바꿈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시스템에서 사회적 돌봄은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드는 결과물이다."(168쪽)
'돌봄 민주주의' 확립을 주장한 미국의 정치학자 조안 C. 트론토는 '돌봄 결핍'과 '민주주의 결핍'은 강한 상관성을 갖는다고 했다. 돌봄 불평등이 심화되면 계층간 격차가 확대되고 차별과 배제를 재생산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다.
저자는 "(사회적협동조합처럼) 사람들이 통제권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원칙은 사회복지체계의 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특히 장애인, 빈민, 소외된 사람들과 같이 의존도가 높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욱 중요하다"(168쪽)고 이야기한다. 사회복지를 지금보다 좀 더 인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사회적 돌봄의 개혁을 강조한 그는 이를 돌봄의 '민주화'라고 표현했다.
커뮤니티 케어가 한국 사회에서 돌봄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전략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복지선진국들의 사회적협동조합 사례는 커뮤니티 케어 시대를 만들어가야 할 우리에게 주목할만한 단서를 제공한다. 현장 사회복지활동가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협동조합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 사람을 위한 경제, 그 이상과 실천을 만나다
존 레스타키스 지음, 김진환.이세현.전광철 옮김,
착한책가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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