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유정열 시민기자가 찍은 한 아파트 협조문. 빌라 거주자를 폄하하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유정열
최근 우연히 '빌거'에 관련한 기사를 읽었다. 글은 한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에 붙은 협조문에서 시작된다. 단지 내 쓰레기 투척 문제를 짚는 이 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게 뭡니까! 그래도 아파트에 거주하신다는 분들이 인근 빌라에서 사는 분들과 뭐가 다릅니까? 종량제봉투는 제대로 묶어서 배출하고..."
쓰레기를 잘 버리라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쓴 이는 주거지로 사람의 격을 나눈 이 협조문을 보고 충격을 받은 동시에, 자신 역시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인근 빌라에 사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보면서 짜증이 나고 불편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빌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을 나무랄 자격이 과연 어른들에게 있을까 고민을 던졌다(관련 기사 :
'빌거' 쓰는 아이들, 나무랄 자격 있나요?).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빌거'는 '빌라 거지'의 줄임말이다. 17년 된 빌라에서 17개월 된 딸을 키우는 내게 이 단어는 작지 않은 충격을 줬다. 어린 시절부터 아파트에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우리 부부에게 아파트란 살고 싶지도 않고, 살 수도 없는 주거공간이다. 서울에서는 아파트를 제외하면 주거 선택지가 별로 없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와 조금 떨어진 빌라 동네에서 산 지 2년이 돼 간다.
빌라에서 쓰레기 버리기
빌라에 살다보면 가장 불편한 점은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다. 2년째 같은 빌라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정확히 어디에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지 헷갈린다. 자꾸 장소가 바뀌기 때문이다.
어느 한 곳에 쓰레기봉투가 모여 있으면 '여긴가 보다' 하고 쓰레기를 버린다. 그러면 다음날 빨간 글씨로 '쓰레기 투척 금지'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모두들 자기가 사는 빌라와 담벼락 근처에 쓰레기가 모이면 바로 민원을 넣기 때문이다. 누군들 집 앞에 악취 나는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길 바라겠나.
행정상 쓰레기는 자기 집 앞에 버리는 것이다. 빌라 네 동이 모여 있고 1층이 주차장으로 뚫린 빌라에 사는 사람들의 '집 앞'은 어디일까. 우리 빌라 입구는 깊숙한 터널 혹은 동굴 같다. 쓰레기를 수거하시는 분들이 이곳까지 들어와 일을 볼만한 위치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 빌라 사람들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늘 거리를 서성인다.
평소 쓰레기를 놓던 곳에 또 금지문이 붙었다. 음식물 쓰레기와 큰 일반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온 나는 '멘붕'에 빠진다. 금지문만 붙어 있을 뿐, 안내문은 없다. 이쪽저쪽 한참을 서성이다 대충 쓰레기가 모여 있는 곳에 놓고 도망치듯 집으로 달려간다.
비싼 쓰레기봉투에 음식물 쓰레기통 스티커도 빠짐없이 부착하고 요일과 시간도 맞춰 나왔는데, 쓰레기 버리는 일은 언제나 양심도 함께 버리는 일처럼 죄책감을 동반한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애쓰며 산다. 빌라 사는 내게 쓰레기 버리는 날은 내가 버리는 쓰레기처럼 찝찝한 기분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