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의 컴퍼스(갈릴레오 박물관) 이 컴퍼스는 대포의 발사각 뿐 아니라 건축물이나 벽의 기울기, 산의 높이나 두 점 사이의 거리도 잴 수 있었다. 또한 바다에서 천체를 관측할 때도 쓸 수 있었다.
박기철
망원경으로 발견한 목성의 위성
갈릴레오 이전에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는 가시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관측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천문학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다.
갈릴레오는 베네치아에서 처음 망원경을 접했다. 그리고 이를 개량해 최대 30배까지 확대할 수 있는 고성능 망원경을 만들었다. 이 망원경으로 역사상 최초로 천체를 관찰한다.
망원경을 통해 갈릴레오는 달이 거울처럼 평평한 것이 아니라 지구처럼 산과 골짜기로 울퉁불퉁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발견은 1610년 1월 7일, 목성에 딸린 위성의 발견이었다.
지동설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달이 지구를 돌고 있는데 또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갈릴레오가 발견한 4개의 위성은 목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그리고 목성은 위성을 거느린 채 12년 주기로 공전하고 있었다. 이는 모든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기존 세계관을 뒤집는 강력한 증거였다.
1610년 3월 13일, 갈릴레오는 이 발견을 <별들의 전언>(Sidereus Nuncius, The Sidereal Message)이라는 소책자로 출판했다. <별들의 전언>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전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갈릴레오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처럼 일반 대중의 인기까지 한 몸에 받는 과학계의 슈퍼스타가 됐다. 이 덕분에 코시모 2세는 갈릴레오에게 '수석 철학자 겸 수학자' 자리를 제안한다.
파도바 대학이 붙잡았지만, 강의 부담이 없고 연구 주제에 대한 제한도 없다는 조건이 갈릴레오의 마음을 움직였다. 또한 메디치 가문의 보호가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과 싸울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별들의 전언> 이후 수많은 학자들의 망원경이 하늘로 향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갈릴레오가 본 것이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며 갈릴레오의 발견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갈릴레오의 반박을 요약하면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제발 싸구려가 아닌 성능 좋은 망원경을 쓰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