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쿠츠크 가는 길'슬류단카'의 어느 국도. 잠깐 같이 주행했던 이용술 선생님이 찍어주신 사진이다. 촬영 후 선생님이 싸오신 김치와 전투식량을 먹었다.
김화랑
대학 진학 후 강원도 춘천시에 자리를 잡은 지 4년 째 되었을 때, 휴학계를 내고 친구들과 영상 프로덕션 창업을 했다. 언젠가 인류애로 가득 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뱅뱅클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본금이라고는 스튜디오 보증금 300만 원 뿐이었지만, 생각보다 매출이 꽤 괜찮았다. 통장 잔고와 하나 둘 매입한 고급 장비, 그리고 우상향 그래프가 달콤했다.
달콤함은 포르노처럼 더욱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만든다. 너무 달아서 쓴 맛이 느껴질 때 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건강이 나빠졌고 친구들과 멀어졌다. 그보다도 슬픈 것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잊고 살았다는 것이다. 내 나이 스물다섯 살. 청춘이 아까웠다. 그래서 오토바이로 유라시아를 횡단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꿈을 세웠다.
내가 가진 것은 통학 및 출퇴근용 125cc 오토바이 한 대와 800만 원 뿐이었다. 100만 원을 들여 여행용 촬영 장비와 캠핑 용품을 구매했다. 그러나 오토바이 자가 수리를 위한 스페어 부품을 구입할 비용이 부족했고, 성능 좋은 카메라가 필요했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구입했던 SYM사에 무작정 사업 제안서를 보냈다. 각종 SNS를 통해 브랜드 및 오토바이의 성능을 홍보하고,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을 넘기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DSLR은 강원대학교에서 지원을 받았고, 5월 20일, 드디어 블라디보스톡행 페리에 올랐다.
마침내 유라시아... 좋았냐고? 매일 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