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문제유출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에 앞서 경찰이 압수한 정답 메모 흔적 등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의 구속 여부를 두고 문제 삼는 교사는 거의 없다. 그는 교사에게도 '공공의 적'이다. 한 동료 교사는 "그가 교무부장 자리에 앉아 자녀가 치를 시험지를 살펴보고 결재하는 순간 스스로 교육자임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험의 정답을 사전에 쌍둥이 자녀에게 알려줬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건 법정에서 다툴 문제다.
그에 대해선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태가 숙명여고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말을 들을 땐 교사로서 매우 억울하다. 교사 스스로가 자초한 불신이기에 할 말은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 교사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아이들 앞에 떳떳하게 교단에 선다.
백 보 양보해서 전국 40만 교사들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 예수나 부처 저리 가라 할 만큼 성인군자 같은 교사도 있고, 타성에 빠져 학교를 단순한 밥벌이로 삼는 직장인도 있다. 드물게는 당장 학교에서 떠나야 마땅한 사람도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주목을 받긴 하지만 여느 집단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본다.
모든 학교가 다 그럴 거라고 단정하는 순간 교단에서 아이들을 위해 열정을 바치는 많은 교사가 상처를 입게 된다. 학교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은 공교롭게도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교사의 영혼을 먼저 파괴한다. '세상 물정에 밝고 처세에 능한' 교사들은 어떤 사달이 벌어지든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전국의 교사들을 싸잡아 욕하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이는 마치 자녀 앞에서 담임교사를 손가락질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인터넷 공간은 차마 열어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교사 집단에 대한 분노로 도배되어있다.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오히려 학교에 대한 불신만 더욱 조장될 뿐이다.
요컨대 싸잡아 욕하기보다 차라리 '이질적인' 교사들 사이에 '자정 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믿고 지지해주는 것이 더 낫다. 학교 내 비리가 내부적으로 드러나고 조직 내에서 합당한 책임을 묻는 장치가 마련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다. 교사들 간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교직 사회가 민주화되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이번 사건에 숙명여고에 근무하는 다른 교사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본다. 쌍둥이 두 자녀의 성적 추이에 대해 아이들 대부분이 합리적 의심을 보내는 상황을 몰랐을 리 없다. 급기야 아이들과 학부모가 나설 때까지 방관했다는 건 교사로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윗분'들의 일로 여겨 나 몰라라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립학교는 교원임면권을 학교법인이 쥐고 있다. 일개 교사가 교장, 교감, 교무부장 등으로 이어지는 '결재 체계'에 토를 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평교사라면 승진 포기와 좌천을 각오해야 한다. 최근 학생 수 감소에 따라 급증하고 있는 기간제 교사의 경우에는 '직'을 걸어야 가능한 일이다. 국·공립학교에 견줘 사립학교에 비리가 더 많은 이유로 봐도 무방하다.
비리 교사를 일벌백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눅이 든 채 몸을 사리는 수많은 교사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교장과 교감 등 관리자들의 전횡을 막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사립학교법의 개정 또한 큰 힘이 될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부디 교사들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을 거두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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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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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고만의 문제겠어?" 이 말에 무너진 교사의 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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