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올림 김애란 작가 소설 전시강연장에 마련한 김애란 작가 소설 전시
시민기회단 나침반
김애란 작가는 데뷔한 지 15년이 넘었고 그동안 쓴 소설이 5권이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두근두근 내 인생' '바깥은 여름' 가운데 몇 편을 골라 줄거리와 등장인물, 쓰게 된 배경을 말하며 특히 인물이 사는 공간에 주목해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작가가 태어난 인천시 송현동 꼭대기 아버지의 자취방, 20대 서울에서 살기 전까지 대부분 시간을 보낸 우체국, 초등학교, 목욕탕이 단 하나뿐이었던 서산시 대산면, 아홉 번 이사하며 살거나 보았던 서울의 원룸, 투룸, 옥탑방, 고시원, 아파트 등 청춘이 머문 칸 또는 방, 공간의 사연을 들려준다.
<침이 고인다>에 실린 단편 <자오선을 지나갈 때>에 주인공은 노량진 여성 전용 고시원에서 사는 재수생이다. 그녀는 6년 후 <비행운>에 실린 단편 <서른>에 다시 등장해 그동안 생활을 들려준다. 작가가 쌍둥이로 태어나서일까? 쌍둥이 같은 소설을 썼다 말한다. 학자금과 생활비에 쪼들려 신용불량 상태인 주인공이 나이 서른에 옛 남자 친구로부터 다단계 조직을 소개받아 돈과 사람과 영혼이 탈탈 털리는 얘기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만 해도 이런 비극이 연출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바깥은 여름> 첫 대목인 단편 <입동>도 삶의 비극을 연출한다. 신산한 청춘을 지나 결혼한 부부가, 근근이 대출을 잔뜩 안고 아파트를 마련한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는다. 부부가 정착했다고 안심한 곳이 허공이었구나 허탈해하는 장면이 있는데, 작가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도착한 자리가 여기였나' 이런 질문을 하며 소설을 썼다 한다. 초고속 성장과 무한 경쟁에 내몰리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고, 부부가 잃어버린 아이 영우에 대해, 그 소중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게임과 영화 등 영상매체가 소설의 자리를 대신 하지 않을까, 여기에 대한 답도 고민해 봤다 한다. 특히 "게임의 경우 미션을 수행하고 이겨야만 하는데, 소설은 인물이 실패해도, 판돈을 다 잃고도 뭔가 거둬간다는 느낌이 있다"라고 한다. 왜 때때로 어떤 인간들은 다른 선택을 하지? 진실을 찾거나 선을 위해, 본래 용감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다리를 후들거리며 한 걸음씩 내딛는 인물들은 왜 그렇게 하지? 작가가 좋아하는 문학이 가끔 그런 인물을 보여 줬고, 자신의 소설 역시 아주 가끔은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고.
김애란 작가 강연의 백미는 청중과 묻고 답하는 시간이다. 작가 스스로 고백한다. "강연은 공연을 준비하듯 한다"고. 좋은 공연을 위해 미리 만든 리듬에 맞춰 웃음과 감동을 적절히 배치하고 연출한 면이 있는데, 청중과의 대화는 연주로 치면 즉흥 연주다.
김 작가는 "서른과 마흔의 차이에 대해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았지만, 창작자로서는 체력의 차이, 시민으로서는 책임감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예전엔 밤새우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제3금융권에서 체력을 빌려다 쓰는 기분이라고. 조금만 소홀히 하면 무서운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 서른 이후 체력과 건강이라고 정의했다.
많은 청중의 고개가 함께 끄덕여진 순간이었다. 감수성을 올리는 방법에 대한 작가의 답도 이날은 "건강과 체력"이었다. 요즘 미세먼지가 심하다 보니 타인에 대한 공감, 배려 보다 자신의 신체와 안위에 집중하게 되더란다. 건강과 체력을 지키고 환경이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여담처럼 들려줬다.
더 많은 청중이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김애란 작가의 다음 소설은 아마도 장편이 될 것 같다는 얘기도 들었다. 작가는 열심히 써 보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