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억새군락지 바로 아래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가족 단위 등산객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철쭉제 누리집
그러니 정상 바로 아래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는 황매산의 이점에 나는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경남 합천군과 산청군 경계에 있는 해발 1108m의 황매산이 어떻게 정상 아래까지 찻길을 갖추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황매산은 가야산(1430m)과 함께 합천을 대표하는 명산이다. 영남지역 산악인들에게는 '영남의 소금강'으로 불린다. 황매는 청매(靑梅)와 마찬가지로 매실이 익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직 덜 익은 매실이 청매고, 충분히 익은 게 황매다. 이 산이 황매로 불리게 된 까닭은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 풍광이 활짝 핀 매화잎 모양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983년에 군립공원이 되고, 2012년에 <시엔엔(CNN)> 선정의 '한국에서 가봐야 할 50선'에 뽑혔고, 2015년 산림청의 한국 야생화 군락지 100대 명소에도 선정된 황매산은 소백산, 지리산 바래봉에 이어 '철쭉 3대 명산'에 이름을 올렸다. 4월 말에서 5월 중순까지 열리는 '황매산철쭉제' 기간에 이 산의 정상은 진분홍빛 철쭉으로 뒤덮인다고 한다.
철쭉군락지가 봄나들이 행락객을 불러들인다면 가을에 사람들을 꾀는 것은 해발 900m 고지를 뒤덮은 은빛 억새 물결이다. 철쭉군락지가 있는 북서쪽 능선 아래 해발 900m의 황매평원(平原)에 펼쳐지는 억새밭은 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일대 장관이다.
이른바 '억새 명산'은 경기도 포천 명성산(鳴聲山·922m), 강원도 정선 민둥산(1118m), 간월재(약 900m)에서 신불산(1159m)을 거쳐 영축산(1081m)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전남 장흥의 천관산(723m) 등이 손꼽힌다. 여기에 지역에 따라 충남 보령 오서산(烏棲山·791m), 창녕 화왕산(火旺山·756m)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화왕산은 한때 영남에서 명성이 높았으나 2009년 억새 태우기 행사 도중 인명이 희생되는 불상사가 있고 나서 명성이 다소 바랬다. 경남에서는 이밖에도 함양 황석산(黃石山·1190m)에서 거망산(擧網山·1184m)에 이르는 산줄기를 보태기도 하는데 명성은 멀리 있으니 스스로 찾아, 발길 닿는 곳이 바로 '명산'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두 시간 남짓 만에 해발 900m 황매산 오토캠핑장 위 은행나무 주차장에 닿았다. 황매산에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은 것은 노부모를 동반해도 차량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더니 가족으로 보이는 등산객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평일이라 등산객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점심을 먹기에는 일렀으나 산에 올라 시장해진다면 곤란한 일, 일단 먹고 오르기로 했다. 주차장 위 매점을 겸한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었는데, 참기름을 넉넉히 두른 비빔밥의 맛은 훌륭했다. 정상 부근에서 시중가와 같은 가격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이 산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