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 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7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최윤석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데 누구는 무죄, 누구는 유죄라면?
서울북부지방법원 형사9단독은 동성 간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기소된 육군 장교 A씨에게 지난 2월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제5군단 보통군사법원은 같은 혐의의 육군 장교 B씨와 부사관 C씨에게 지난 1월 유죄 판결을 내렸다. 제2군단 보통군사법원도 역시 같은 혐의의 육군 부사관 D씨에게 지난 3월 유죄를 선고했다.
A~D씨에게 적용된 군형법 92조 6항에는 "(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강제 여부와 상관없이 군인 간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이 이뤄지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3년 군형법에서 '계간(동성 간 성관계)'을 처벌하는 내용이 빠졌지만, 이 조항은 여전히 동성애를 처벌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추행 자체를 처벌하는 조항은 군형법만의 독특한 내용이다. 일반 형법은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추행 외엔 추행만을 이유로 처벌하지 않는다. 강제추행(형법 298조), 준강간(299조)과 같이 "폭행 또는 협박",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 등이 전제돼야 죄로 인정한다.
무죄 판결 재판부 "의사에 반한 성관계만 처벌"
A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은 군형법의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재판부는 "(군형법 92조 6항은) 강제력의 수반 여부나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지 여부, 그 시간이나 장소 역시 불문하고 항문성교 등의 추행을 한 경우에 모두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해당 조항은 위계·위력 등을 이용해 상대방 군인의 의사에 반하여 항문성교 등의 성적 만족 행위를 한 경우에 적용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같이 판단한 이유로 "해당 법률조항의 보호법익(법의 규정이 보호하려고 하는 이익)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이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내세웠다.
재판부는 "우월적 지위나 권세 등을 이용한, 상대방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군무를 이탈하게 하는 등의 원인을 제공한다"며 "그러나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은 당사자들의 자발적 합의에 의한 구강성교, 항문성교 등의 성적 만족 행위의 경우 이 사건 보호법익에 위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군인 사이의 성적 만족 행위가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하여 은밀하게 행해짐으로써 타인의 혐오감을 직접 야기하지 않는 경우 군기나 전투력 보전에 직접적인 위해를 발생시킬 위험은 없다. 형법이나 성폭법에서의 추행은 (중략) 피해자의 의사에 반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 사건에도 이를 고려함이 타당하다. 또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은 동성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한 입맞춤, 포옹, 성교행위 등의 성적 만족 행위를 (중략)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
만기전역으로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A씨와 달리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B~D씨에게는 모두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각 재판부는 "군형법상 추행 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B씨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C·D씨에게 선고유예를 판결했다. 선고유예는 유죄 취지의 판결로,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유예기간 동안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형을 면하는 제도이다.
문제의 조항 '군형법 92조 6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