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담배 종이에 그린 '은지화'속에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이중섭 미술관 제공
부산에서 제주까지 계속되는 피난 생활을 하면서 남덕은 폐결핵에 걸려 각혈까지 했고, 두 아이는 영양실조에 걸렸다. 고민끝에 이중섭은 아내와 아이들을 처가가 있는 일본에 먼저 보내고 자신까지 곧 뒤따라 일본으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선택이 되었다. 가족을 떠나 보내고 한국에서 혼자 살아가기에 전쟁 직후인 조국의 상황은 너무나 척박했고, 어려움을 헤쳐나가기에 이중섭은 그만큼 강하지도 억척스럽지도 못했다.
이중섭이 남긴 작품은 약 320여 점으로 전해진다. 유화 60여 점, 은지화 120점, 드로잉 150점, 엽서화 88점 등이다. 은지화는 그림 재료 살 돈이 없어 양담배 종이에 그린 그림이다. 이렇게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그림을 치열하게 그렸다. 그림을 빨리 그려서 팔아, 보고 싶은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서다. 며칠이 멀다 하고 일본에 있는 아내와 아들에게 그리운 마음이 담긴 편지를 부쳤다.
오늘로 1년째가 됩니다. 1년 또 1년, 이렇게 헤어져서 긴 세월을 보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함께 있지 않아선 안 되오. 당신과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서 얼마나 마음이 들떠 있는가를 생각해 보구려. 힘을 내 주시오. 꼭 확실한 성과를 거두도록 하시오. 답장 기다리오.
-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1954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