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의 한 중학교에서 시집 <프로메테우스> 문학특강 때 찍은 사진. 학교폭력에 관련된 이야기와 함께 그에 관한 창작시를 진솔하게 '낭독'했다.
박용진
나의 '시 낭독'은 학교폭력으로 비롯된 한 학생의 고통을 공동체적 공감의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한 학생이 폭력으로부터 심각한 신체적·심리적 외상을 얻었다고 해보자. 폭력으로부터 자주 환기되는 감각들은, 피해 학생의 내면에 갇혀 있을 때, 그가 받았던 고통 이상의 의미로는 절대로 확대되지 않는다.
일반 학생들은 피해 학생의 고통에 무감각하다(심지어 대부분의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 학생만 고통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작년 겨울, 신문 기사를 보았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유서를 품고 아파트 7층에서 투신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버스정류장에 주저앉아 울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귀가 어떻게 하나도 없었을까. 13살이면 동시에 감동해야 할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아이가 어른들의 심부를 찌르는 한 마디 문장을 남기고 투신했다.
"어른들은 좋은 말만 하는 선한 악마예요."
투신하기까지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나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SNS를 시작했다. 나의 심정을 글로 써서 매일 올렸다. 그렇게 시작된 학교폭력과의 투쟁은 시집을 넘어 더 현실적인 세계로 넘어오게 되었다.
학교로 더 많이 찾아갔다. '화사한 폭력'을 지금도 낭독한다. 나는 폭력의 부정적 의미들을 더 넓은 토론의 장으로 끌고 나오려고 노력한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시 낭독은 효과가 있나요?" "네 있습니다." 나는 여러 학교 현장에서 폭력의 참혹함을 최대한 문학적으로 전해주려고 매번 노력한다. 물론 교육 대상이 어린 학생들일 때 끔찍한 표현은 삼간다. 학생들은 질문을 하나 둘 하기 시작한다.
"선생님, 왜 꽃을 쳐다보셨나요? 왜 담장을 넘는 공 밖에는 보지 못하셨나요? 친구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나요? 선생님은 지금도 아프신가요?"
이러한 질문은 나에게만 던지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학생들 스스로에게, 또는 옆 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던지는 이런 질문들은 (교실에서 참관하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던지는 질문으로 확대된다. 우리는 학교폭력에 대한 거의 최초의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그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이구나. 그것이 그렇게 사람을 아프게 하는구나. 내가 친구를 아프게 했구나.'
누군가를 아프게 했던 친구가 그 현장에 있을 수도 있다. 참관하신 선생님도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꺼내야 하지만, 꺼내기 불편한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하는 것이 '학교폭력'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폭력의 부정성을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게 눈에 보인다.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려는 마음이 생겨나면, 폭력으로부터 누군가를 지켜내려는 마음 또한 생기게 마련이다. 왜 '예방이 안 된다'는 걸까? 나는 예방의 효과를 믿는다. 소금 한 톨이 들어갔다고 해서 컵 속에 담긴 물이 바로 소금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금 한 톨 한 톨이 계속해서 그 컵 속으로 들어간다면, 그 물은 언젠가 누가 봐도 소금물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상태가 될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은 늘 그런 방법으로 이 땅에 찾아왔다. 변화를 주도해나가는 어떤 간절함이 있다면 학생들은 그것을 더욱 신뢰하게 될 것이다. 가해 경험이 있었던 한 학생은 여러 교육 관계자와 피해자 그룹이 함께한 '공동체대화'에 참여해서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 진심으로 감동을 주는 선생님께 저는 함부로 할 수가 없었어요."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동을 준다는 것은 어떤 것이었는가. 나는 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학교폭력 근절'에 나는 왜 그렇게 매달릴까. 4월의 꽃처럼 피어나는 그 폭력의 계절로부터, 다시는 도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들을 한 명이라도 줄여보려고 오늘도 몸부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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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없는 학교를 소망합니다. 제 첫 시집 『프로메테우스』를 학교에서 낭독합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피해학생들을 치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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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남긴 유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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