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가 쓴 '무량수각' 편액. 제주로 유배 가는 길에 들러 썼다고 전해진다.
이돈삼
대흥사의 당우에 걸린 편액도 눈여겨봐야 한다. 대흥사의 편액은 조선시대 명필가들이 쓴 것이 많다. 무량수각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서산대사의 유품이 보관돼 있는 표충사의 편액은 정조대왕이 직접 써서 하사했다. 대웅보전은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진다. 당초 대웅보전에는 원교 이광사가 쓴 편액이 걸려 있었다. 1840년 제주도로 귀양 가던 추사 김정희가 친구 초의선사를 만나러 대흥사에 들렀다. '글씨를 안다는 사람이 이런 글씨를 아직도 걸어놓고 있냐'며 원교의 글씨를 내리게 하고, 자신이 글씨를 써주며 걸도록 했다. 무량수각의 편액도 그때 써줬다.
당시 이광사는 자연과 어우러진 자주적인 글씨, 동방의 진짜 글씨를 주창하며 동국진체를 완성한 서예가였다. 김정희는 그 이전 명·청나라의 글씨가 진짜 글씨라고 주장했다.
추사는 8년 여의 제주 유배에서 풀려나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렀다. 유배 길에 써준 자신의 글씨를 떼고, 원교의 편액을 걸도록 했다. 이광사의 편액이 걸렸다 내려졌다, 다시 걸리는 곡절을 겪었다. 추사가 제주도 귀양에서 수없는 나날을 고뇌하며 겸손의 미덕을 많이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