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일깨워준 내 조촐한 자전거
윤일희
그로부터 5년 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고 왜 그랬는지 한동안 자전거를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책모임에서 '호수공원 자전거 하이킹'이 제안됐다. 다들 자전거 타 본 지가 언젠지 모르겠다는 뒷걸음질에, 한 멤버가 "몸이 기억하지 않겠어요?"했다. 이 한 마디에 다들 찔끔대던 걱정을 날리고 자전거 라이딩을 감행했다.
자전거 하이킹에 끌고 나온 자전거를 보아하니, 다들 처박아둔 지 오래된 터라 광택을 잃은 지 오래였고, 내 자전거만큼 작은 생활 자전거였다. 게다가 자전거를 탄다는 사람들이 어디 동네 마실가는 차림새가 아닌가? 클클클. 라이더들의 유니폼인 쫄쫄이 바지에 헬멧, 복면형 마스크 등 무슨 운동이든 장비 먼저 선수급으로 챙기는 '가오형 라이더'는 다행히 없었다. 한 시간 남짓이면 도는 동네 둘레 길을 히말라야라도 정복할 복장을 하고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던 터였기에.
서로의 구닥다리 자전거를 흘끔거리며 낄낄대던 멤버들의 생활 자전거 5대는 상쾌한 호수 바람을 맞으며 줄줄이 달렸다. 몇 차례 나오는 깔딱 고개에서 가장 젊은 친구만 기아 힘으로 올라설 수 있었고, 나머지는 내려서 끌고 올라가야 했지만 그럼에도 모두 중단하지 않고 목표한 구간을 완주했다.
완주 후 점심을 먹으며 한 멤버 왈, "어려서 자전거 한 번 탈라치면, 처녀막이 터지네 어쩌네 하며 겁주는 통에 못 탔잖아요. 완전 속았지. 이제 다시 타야겠어요. '몸 쓰기 퍼포먼스'가 바로 이런 거 아니겠어요?" 그렇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엔 마음뿐 아니라 몸의 주체성도 있었다.
우연히 다시 자전거 본능을 일깨운 나는 이후로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탄다는 목표를 세우고 실행 중이다. 가장 난코스는 집 아래 대로에서 아파트까지 올라오는 약 100m 되는 경사로인데(한 45도 정도?), 몇 주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김훈이 <자전거 여행>에서 굽이굽이 고개를 넘으며 자전거를 '갈며' 넘는다고 한 말이 있다. 몸을 자전거에 딱 붙이고 맷돌을 타듯이 몸을 갈며 마침내 '깔딱' 넘어섰다. 와우!!!
80 고령의 할아버지 라이더를 신문에서 보고 혀를 내두른 적이 있었다. 경탄이 나오지만, 나는 이 할아버지처럼 80이 넘을 때까지 자전거를 타겠다든지, 김훈처럼 자전거로 백두대간을 종주하겠다는 등의 원대한 꿈은 꾸지 않는다. 그저 눈이 많이 내리기 전까지 내 조촐한 자전거와 함께 부지런히 달려 보려 한다.
방금, 쫄쫄이 유니폼을 입은 라이더의 폼 나는 자전거가 내 옆을 빠르게 스치며 지나간다.
"가라. 내 질주 쾌감은 경쟁하며 얻은 것이 아니니. 나는 나만의 속도로 달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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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갈며 '깔딱' 고개를 넘는 그 순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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