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기 박사의 서예 '부덕고'
한상기
한 박사는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경비행기 조종사와 이 비행기를 타고 가던 연구소 동료 3명은 태풍에 휩쓸리면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졌다. 물도 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아프리카에서 한 박사의 아내는 힘들고 외로웠다. 남편이 출장을 갈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무사귀환을 빌고 또 빌었다. 아프리카 23년 생활의 외로움과 가슴 졸임이 끝내 병이 된 것일까. 한 박사는 아내의 병이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아 괴롭다.
'일왕불퇴'(一往不退, '한번 갔으면 뒤돌리지 말라'는 서산대사의 말)와 '일진불퇴'(一進不退, '한번 나갔으면 다시 돌아오지 말라'는 조주 스님의 말)를 가슴에 품고 아프리카로 떠난 그는 23년간 하루도 결근하지 않고 일했다. 1994년 61세로 은퇴해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21년간 살았다. 나이지리아 이바단 연구소도 클리블랜드도 외로웠다. 고향 떠난 나그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베네딕토 수도원 신부들이 운영하는 성당 새벽미사에 참례했다.
한상기 박사는 2015년, 44년간의 타국 생활을 정리하고 병든 아내와 함께 귀국했다. 태어난 땅에 묻히기 위해서다.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외롭고 쓸쓸하다. 기근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살렸지만 자신을 위해 희생한 병든 아내는 살리기는커녕 돌보기조차 못하니 슬프다. 외로움과 쓸쓸함과 슬픔을 기도와 시와 서예로 달랜다.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생로병사, 귀천을 준비하는 노학자는 자신이 펴낸 명상시집 <아프리카, 광야에서>(따뜻한손)에서 세월을 이렇게 노래했다.
강 이쪽에서
나이를 먹는데
강 건너 저쪽에서
늙어가네.
(한상기 박사의 시 '강 건너 저쪽에' 일부)
조용한 혁명을 일으킨 '한국에서 온 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