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킷감청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 현수막2016년 3월 진행한 패킷감청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
참여연대
사건 개요
이 사건은 이른바 '패킷감청'의 위헌성을 다투는 사안이다. 패킷감청은 인터넷회선감청이다. 즉 인터넷회선을 통하여 흐르는 전기신호 형태의 '패킷(packet)'을 중간에 확보한 다음 재조합 기술을 거쳐 그 내용을 파악하는 감청이다. 따라서 특정한 개인뿐 아니라 그와 동일한 인터넷회선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감청대상이 되기 쉽다. 또한 재조합하기 전 패킷 단계에서는 그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일단 모든 통신 내용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감청 대상 범위가 매우 넓다.
국가정보원장은 A의 국가보안법위반 범죄수사 과정에서 수사대상자가 사용하는 휴대폰을 비롯하여 전기통신의 감청을 했다. 2008년경부터 2015년경까지 법원으로부터 총 35차례의 통신제한조치를 허가받아 집행했다. 그 중에 2013. 10. 9.부터 2015. 4. 28.까지 사이에 B연구소에서 A 명의로 가입한 인터넷회선에 대한 6차례의 통신제한조치를 포함하고 있었다.
A는 청구인 6차례의 패킷감청에 대한 법원의 허가, 국가정보원장의 감청행위, 통신비밀보호법 감청 개념, 통신제한조치 근거, 통신제한조치 허가절차 조항을 문제 삼았다. 그것이 통신의 비밀과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상 영장주의, 적법절차원칙 등에 위반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통신제한조치 근거조항인 통신비밀보호법 제5조제2항이 헌법에 맞지 않으므로 2020. 3. 31.까지 개정하라면서 그때까지는 일단 해당 조항을 적용하라고 결정했다(헌재 2018. 8. 30. 2016헌마263).
개인정보 인권의 문제 상황
'국가안보를 위해 어느 정도의 사생활은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숨길 게 없다면 정부가 감시한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안보 당국이 내린 결론을 함부로 의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사생활-안보 논쟁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사생활은 안보 논리에 의해 부당하게 폄훼된다. 국가안보 우려는 즉각적이다. 생명이나 신체를 잃는 문제로 곧바로 결부한다. 반면 사생활의 자유와 권리는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특히 한국은 분단 상황에 놓여 있고, 오랫동안 반공이데올로기에 짓눌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어느 정도 사생활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보 강화를 역설하는 사람들은 사생활과 안보가 이렇게 근본적으로 상충관계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그러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는 외부의 폭력 못지않게 위험하다. 국가의 범죄수사 권력은 사법정의를 실현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시민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다. 인권침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권력 작용이어서 가장 엄격한 규제 대상이어야 한다. 특히 수사 권력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헌법 자체가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낸다.
헌법의 법리가 급변하는 정보통신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규제의 근거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수사 권력의 정보통신기술 사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거꾸로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권한을 부여하지 않으면 정보통신기술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오길영은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 문제를 제기한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네비게이션, TV 등 기기들은 전통적인 단일 기능에 머물러 있지 않다.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유선과 무선, 방송과 통신, 통신과 컴퓨터 등 기술․산업․서비스․네트워크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융합 상품과 서비스가 등장했다.
인터넷회선은 그 모든 것의 연결매체다. '개인 식별 정보(personally identifying information, PII)'라는 개념에 근거한 규제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개인 식별 정보는 주로 이름이나 고유의 계정 번호 등이다. 하지만 개인 식별 정보는 데이터의 양의 문제이기도 하다. 익명의 정보라도 개인에 관한 정보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개인을 찾아내기는 쉽다.
입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권력이 할 수 있음에도 해서는 안 될 것이 반드시 폭넓게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인권의 보호범위이고, 기술의 발전 영역은 인권 보장을 위해 국가권력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지 원칙을 정립해야 할 핵심 영역 중 하나다.
오길영은 오늘날 사람들의 삶이 디지털 없이 생각하기 어렵고, 그래서 디지털 그 자체가 삶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감청은 결국 삶 전체를 감청하는 것이다. 인터넷회선 감청으로 수사기관은 타인 간 통신 및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해당하는 통신자료까지 취득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통신제한조치에 대한 법원의 허가 단계에서는 물론이고, 집행이나 집행 이후 단계에서도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 관련 기본권 제한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입법적 조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헌재의 위헌 논증과 결론
통신비밀보호법은 "범죄를 계획 또는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경우" 보충적 수사 방법으로 통신제한조치를 활용하도록 요건을 정하고 있고, 법원의 허가 단계에서 특정 피의자 내지 피내사자의 범죄수사를 위해 그 대상자가 사용하는 특정 인터넷회선에 한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감청이 이루어지도록 제한이 되어 있다(법 제5조, 제6조).
그러나 '패킷감청'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회선 감청은 수사기관이 실제 감청 집행을 하는 단계에서는 해당 인터넷회선을 통하여 흐르는 불특정 다수인의 모든 정보가 패킷 형태로 수집되어 일단 수사기관에 그대로 전송되므로, 다른 통신제한조치에 비하여 감청 집행을 통해 수사기관이 취득하는 자료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방대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특정 다수가 하나의 인터넷회선을 공유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실제 집행 단계에서는 법원이 허가한 범위를 넘어 피의자 내지 피내사자의 통신자료뿐만 아니라 동일한 인터넷회선을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인의 통신자료까지 수사기관에 모두 수집⋅저장된다. 따라서 인터넷회선 감청을 통해 수사기관이 취득하는 개인의 통신자료의 양을 전화감청 등 다른 통신제한조치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인터넷회선 감청은 집행 및 그 이후에 제3자의 정보나 범죄수사와 무관한 정보까지 수사기관에 의해 수집⋅보관되고 있지는 않는지, 수사기관이 원래 허가받은 목적, 범위 내에서 자료를 이용⋅처리하고 있는지 등을 감독 내지 통제할 법적 장치가 강하게 요구된다.
현행법은 관련 공무원 등에게 비밀 준수 의무를 부과하고(법 제11조), 통신제한조치로 취득한 자료의 사용제한(법 제12조)을 규정하고 있는 것 외에 수사기관이 감청 집행으로 취득하는 막대한 양의 자료의 처리 절차에 대해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전기통신 가입자에게 집행 통지는 하게 되어 있으나 집행 사유는 알려주지 않아야 되고, 수사가 장기화되거나 기소중지 처리되는 경우에는 감청이 집행된 사실조차 알 수 있는 길이 없도록 되어 있어(법 제9조의2), 더욱 객관적이고 사후적인 통제가 어렵다.
또한 현행법상 감청 집행으로 인하여 취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범죄와 관련되는 범죄를 수사⋅소추하거나 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하여도 사용이 가능하므로(법 제12조제1호) 특정인의 동향 파악이나 정보 수집을 위한 목적으로 수사기관에 의해 남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인터넷회선 감청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감청을 수사상 필요에 의해 허용하면서도, 관련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집행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경과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하도록 하거나, 감청을 허가한 판사에게 감청 자료를 봉인하여 제출하도록 하거나, 감청자료의 보관 내지 파기 여부를 판사가 결정하도록 하는 등 수사기관이 감청 집행으로 취득한 자료에 대한 처리 등을 객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는 입법례가 상당수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의 통신제한조치 근거 조항은 인터넷회선 감청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 집행 단계나 집행 이후에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고 관련 기본권의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가 제대로 마련하고 있지 않다. 인터넷회선의 감청을 허용하는 것은 개인의 통신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의 통신제한조치 근거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는 것으로 위헌이다.
그런데 헌재는 통신제한조치 근거규정을 곧바로 무효화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인터넷회선 감청을 통해 수사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사라져 범행의 실행 저지가 긴급히 요구되거나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 범죄의 수사에 있어 법적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다. 그 결과 법률조항의 위헌성을 제거하고 합리적인 내용으로 개정할 때까지 일정 기간 잠정적으로 적용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