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을 확인하는 태그어떤 사람들은 찍기만 하면 급여가 지급된다.
수확의계절
요양보호사가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수급자(노인들) 집에 방문해 그 집에 설치된 태그에 핸드폰을 대면 방문요양이 시작된다. 등급이나 여건에 따라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요양서비스를 제공한 후 다시 핸드폰으로 태그를 찍으면 일이 끝나고 다시 다른 수급자 가정으로 이동해 태그를 찍고 일을 시작한다.
출근하지 않고 요양급여를 타가는 일을 막기 위해 수급자 집에 태그를 설치해 출퇴근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정수급은 자유자재로 그 빈틈을 빠져나간다. 사례를 보자.
[사례 1] 출근 태그, 퇴근 태그만 찍으면 끝
A가 사는 동네엔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이 살고 있다. 그 노인 집에는 아침마다 차 한 대가 왔다 가는데 차에서 내린 요양보호사 B는 태그만 찍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그리고 일이 끝날 시간이 되면 다시 와서 카드만 찍는다. B는 이 노인을 위해 어떤 요양서비스도 제공하지 않고 태그만 찍고 요양급여를 타갔다. 보다 못한 A가 '눈치 없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고를 했다.
얼마 후 공단 직원이 "요양보호사인 B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태그를 찍었다"는 조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그 다른 사람도 A가 아는 사람인데 A는 그 사람이 온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즉 B는 유령 직원 이름으로 동시에 여러 군데를 다니며 태그만 찍고 요양급여를 받은 셈이다.
물론 일반 요양보호사가 독자적으로 이렇게 하기는 어렵다. B는 요양기관 원장의 가족이다. 즉 요양기관에서 조직적으로 하는 '똑똑한' 부정수급인 셈이다. 가난하고 잘 걷지도 못하는 독거노인은 수고하는 요양기관을 위해 달달이 엄청난 자선사업을 하는 셈이다.
[정리] 일도 안 하고 급여를 타간 행위는 말할 것도 없이 부정수급이다. 급여는 등급별로 한도액이 정해져 있는데 1등급은 하루 4시간씩 한 달에 27일 일하면 요양기관에서 139만6200원을 받는다. 2등급은 하루 4시간씩 24일 124만1100원, 그 외 3~5등급, 인지등급 등이 있다. 사립유치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액수다.
본인이 아닌 유령직원 명의로 급여를 타가는 것도 당연히 불법이다. 어쨌든 유령직원 명의로 카드를 여러 개 만든다는 것은 분신술을 쓰는 것처럼 동시에 여러 사람 몫을 벌 수 있다는 뜻이다. 열심히 돌아다닌 만큼 완전한 보상을 받는 마술이다.
[사례 2] 수급자는 목욕도 못했는데... 목욕 급여 타간 요양보호사
C씨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며 역시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고 있는 수급자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요양보호사가 와서 방문요양서비스를 제공한다. 외견상 매우 평범하다. 그런데 토요일에도 다른 직원이 찾아와 태그를 찍고 간다. 주말에 아들이 왔다가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았더니 토요일마다 카드만 찍고 방문목욕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거짓으로 급여를 타간 것이다.
목욕서비스는 급여가 더 많다. 이 역시 직원 개인이 아닌 요양기관의 조직적인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요양기관은 태그만 찍고 현명하게 급여를 타갔지만, 몸이 불편해 스스로 목욕을 할 수 없는 노인 C는 바보처럼 목욕서비스도 받지 못했다.
[정리] 수급을 받는 노인이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정상적인 서비스가 이루어진다. 정상적인 서비스를 하면서 부수입으로 부정수급을 하는 경우다. 방문목욕은 1회 기준 차량 내 목욕은 7만2540원, 차량이용 가정목욕은 6만5410원, 이동욕조는 4만840원이다.
서로 얼굴을 알고 어느 정도 가까워졌기 때문에 대범하게 모른 척 해주는 경우가 많다. 깐깐한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하긴 하지만 구체적인 처리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불평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공단에 전화를 해도 특별한 조처가 없다. 이러니 수급자 가정에서 불평을 해도 요양기관의 부정수급은 계속된다. 실제로 C의 경우 '매너 없는' 아들이 경고를 했지만 부정수급은 멈추지 않았다.
[사례 3] 수급자에겐 3시간 청구, 공단엔 4시간 가까이 청구
D 역시 방문요양서비스를 받는 중증치매환자다. 요양보호사는 아무 문제없이 일을 하고 있다. D의 보호자 E는 하루 4시간씩 와서 방문요양을 해달라고 요양기관에 요청했으나 원장은 3시간씩만 서비스를 했다. 어느 날 보호자 E는 공단에 가서 그동안의 요양급여 내역을 발급받아 일일이 확인을 해봤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수급자에게 청구한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공단에서 받아갔다.
알아보니 이랬다. 하루 3시간 서비스를 해주고 수급자 D에게는 3시간분의 자기부담금을 청구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공단에는 3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청구해서 그만큼의 급여를 받아갔다. 일반 수급자 가정에서는 공단에서 얼마를 받아가는지 알 수 없으므로 부정수급이 일어난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다.
신고한 사람만 고생
지금까지 말한 사례들은 흔하다. 적어도 내가 사는 지역에서 만나본 수급자들은 대부분 경험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즉, 광범위하고 일상적이다. 이밖에도 많은 사례가 있지만 시야가 좁은 수급자로선 요양기관의 '영민함'과 '큰 그림'을 다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 몇 가지 예만으로도 시스템이 얼마나 '유연하게' 열려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사례1에서 A씨는 눈치 없이 공단에 신고를 했고 공단 직원은 부정 수급을 확인했다. '순진한' 사람들이라면 이제 처벌이 이루어졌길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시스템에 버그가 발생했다.
공단 직원은 "이제까진 B가 다른 사람인 000 이름으로 태그를 찍었는데 다음 달부터는 자기 이름으로 찍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A에게 물었다. 이런 말을 들었다면 우리는 자기 귀를 의심할 것이다. 부정수급을 확인했으면 그에 맞는 처벌을 하면 되지 공단 직원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태도인가 라고.
눈치 없는 A는 "당연히 조치를 취해야지요"라고 대답했다. 직원은 알겠다고 하고는 연락이 없었다. 그동안 B는 성실하게 계속 태그만 찍고 급여를 타갔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A는 다시 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공단직원 "직접 오셔서 신고서류를 작성해 주세요."
A "내가 어떻게 가요?"
공단직원 "신고서류를 작성 안 하면 조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통화를 했지만 직원은 전화를 잘 받지 않았고 어쩌다 통화가 되면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귀여운 앵무새' 같았다. 그렇게 몇 달이 잘 흘러갔고 A는 짜증과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체념해 버렸다. 눈치 없는 사람들은 결국 아무 결과도 얻지 못할 일을 하느라 고생만 한다.
비호 없이 비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