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 쟁취는 노동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끊임없는 요구와 투쟁으로 2004년에서야 이뤄졌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발제를 맡은 박현희 금속노조 법률원 노무사는 "개정 근로기준법은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지 이제 3개월에 접어든 상황에서 300인 이상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 분석에는 한계가 있다. 또 제조업분야를 살펴보면 예상보다 비교적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상황은 아직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박 노무사는 2018년 현재 제조업 사업장들이 처한 현실을 감안하여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경기와 그 영향을 받는 국내 경기 상황상 현재는 불황기며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사업장이 많다. 즉 호황기에 비해 생산량이 줄어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지 않은 시기에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됐다는 얘기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사간 자발적 노동시간 단축은 이미 2018년 전에 이뤄졌다.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의 경우 생산직은 주간연속 2교대제로 노동시간이 주 40시간(휴일 특근 제외)에 근접했으며, 300인 이상 자동차 부품사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제조업 전체 노동자의 약 17%에 해당하는 68만여 명이 주당 52시간을 이미 초과하여 근무하고 있다.
제조업에서 발견된 노동시간 단축 꼼수
박현희 노무사는 실제 제조업 현장에서 주 52시간 시행과 관련하여 포착되고 있는 몇 가지 문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 했다.
첫 번째는 유연근로제의 확산이다. 특히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는 사업장이 매우 많아졌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물량이 많은 시기에 집중 근무를 시키고, 상대적으로 물량이 없을 시기엔 가동률을 낮추는 방법으로 노동자가 최장 64시간(주당 최장근로시간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이를 활용하는 사업주는 연장근로수당 지급, 신규채용에 대한 부담을 면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하고 있다.
또한 교대제 사업장은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과 동시에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합의해 교대조 개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연장·야간·휴일노동시간이 줄어들지만 임금이 대폭 감소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 일은 일대로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특정시점에 집중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할 경우 건강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단 점에서 우려스럽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도 문제다. 제조업의 사무관리직, 연구직 등에서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대폭 확대되고 있다. 전자회사 S기업은 사무실 출입카드를 찍고 들어가서 나오는 시간까지 노동시간으로 체크된다. 반면 전자회사 L기업의 경우 컴퓨터에 접속하는 시간부터 접속을 종료하는 시간까지를 노동시간으로 인정한다. 기업마다 노동시간 기록 기준이 상이할뿐더러 실제 일을 하고도 인정받지 못할 우려가 크다.
노동시간 입력방식을 아예 통제하는 기업도 확인됐다. 자동차 부품사 K기업은 사내전산망에 연장·야간·휴일근로시간 등을 입력하는 시스템을 아예 주 52시간 초과 노동시간 입력이 불가하도록 했다.
탄력근로 도입으로 인해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노동시장의 현장애로를 해소하겠다'며 현행 최대 3개월인 단위기간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주 52시간제 시행 단속·처벌을 6개월 유예한 상황에서 탄력근로의 확대는 진정한 의미의 노동시간 단축 의지가 없는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사업장 밖에서 일한 시간도 인정하지 않는 사례가 확인됐다. 자동차회사 K기업은 출장·외근 시 소정근로시간을 초과하여 일한 경우 부서장의 승인 하에 해당시간을 인정한다.
출장·교육 시 이동시간도 유급으로 인정은 해주지만 실노동시간에선 제외하고 있다. 회사는 임금은 보전하되 실제 노동시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음으로써 정확히 노동시간을 측정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해당 업무가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일임에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노동시간을 왜곡하고 있다.
신상품·신기술 연구개발, 연구직 등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재량근로시간제의 경우 제조업에서 많이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실노동시간에 대해 회사측과 합의한 시간이 달라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노동시간 기록을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점이 있다.
두 번째, 휴게시간을 줄여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식이다. 회사는 임금 삭감을 우려하는 노동자들에게 임금 삭감 없이 하겠다고 유인하여 휴게시간을 늘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형식적으로만 노동시간이 단축된 것처럼 되고, 실제 노동시간은 축소 측정된다.
세 번째, 노동시간 제한 없는 감시단속 승인의 적극 활용이다. 근로기준법 제63조 적용의 제외 조항에 의해 감시단속 노동자의 경우 노동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실제 조선업 D사의 내부자료를 확인한 결과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 소방대 야간 당직 근무자, 환경보건부 야간당직 근무자 등을 대상으로 무제한 노동을 가능하게 했다.
그만큼 감시단속 여부는 신중히 결정되어야 하는 사항이지만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적용제외 승인율이 98.5%나 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쉬운 승인절차에 비해 취소 절차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노동계에서도 계속에서 제도 개선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