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이라는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도입하는 것이므로 그 본래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희훈
대법원판결을 일주일 앞둔 23일, 서울 서초동 인근에서 만난 백씨는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기대하고 있다"라며 "역사적인, 대단한 판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형사처벌은 법률적으로 응보, 일반예방, 특별예정이라는 법적 목적을 갖고 있는데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볼 수 있듯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은 형벌로서의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응보를 위해선 나이, 성향, 범행 후 태도, 현재 상황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겐 징역 1년 6개월이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선고되고 있다. 이들의 경우 대체로 전과가 없고, 피해자가 없으며, 남을 죽이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는 건데 아무런 고려 없이 (병역이 면제되는 최저형인) 1년 6개월을 고정적으로 선고하는 것이다.
일반예방은 다른 사람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이야기하는데, 매년 500~600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별예방은 당사자가 처벌을 받은 후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라고 교화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계속해서 입영을 거부할 사람들이니 이 또한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공은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을 만들어야 할 국회로 넘어갔다. 이전까지 대체복무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거나 애써 등을 돌려왔던 보수정당에서 헌법재판소 이후 관련 법안을 쏟아냈다. 주로 "대체복무로 지뢰제거를 시켜야 한다", "군 복무의 2배 이상 근무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군 소관업무는 제외해야 한다", "군 복무의 1.5배를 넘어선 안 된다" 등의 의견서를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전달하며 제동을 걸었다(관련기사 :
인권위 "지뢰제거, 대체복무에 포함돼선 안 돼").
백씨는 "대체복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이라는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이므로 그 본래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며 "군 복무와의 형평성을 지키면서도 공익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면서 군과 무관한 대체복무가 도입되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뢰제거 등은) 양심을 다른 방법으로 처벌하려는 것으로 헌법재판소 결정에 반하는 논의"라며 "(군 복무의) 1.5배 대체복무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일찍 대체복무를 도입한 많은 나라들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세운, 유럽인권재판소 등 사법적 판단을 거친 중요한 원칙이다"라고 덧붙였다.
"대체복무를 도입하며 군과 관련된 업무를 맡긴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또 입영을 거부할 것이다. 아르메니아의 사례가 그렇다. 무엇보다 지뢰제거 등을 병역거부자가 맡는 것은 국방부도 싫어할 것이다. 나름대로 예산을 받아 전문기계를 사들이고 관련 부대를 육성하고 있는데, 병역거부자를 투입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쩌겠나. 가급적이면 병역거부자들이 양심의 자유를 지키면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면 좋지 않겠나."
그럼에도 백씨는 "보수정당에서도 관련 법안을 만들고 있다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헌법재판소 결정 덕분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머물던 논의의 범위가 대체복무로까지 이어졌다, 내용이 적절한지 여부를 떠나 국회가 헌법적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체복무 도입은 필연적 흐름이 됐다"라고 덧붙였다.
"특정 종교 특혜? 양심상 고민하는 이들에게 기회"
백씨는 수형생활 당시 교도소에서 '영치' 업무를 담당했다. 재소자의 물건을 검열하고 지급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그런 업무도 대체복무에 포함될 수 있겠다"라는 질문에 백씨는 "교정기관에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단 대체복무자들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대체복무에 포함됐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민과 마주할 수 있는 업무"를 강조했다.
"2000년 대체복무제를 시행한 대만의 경우, 대체복무자들이 주로 중증장애인·노인 간병을 맡았다. 또 대지진을 겪으며 그들이 많은 어려운 일을 해냈다. 대체복무자들이 이웃을 근접거리에서 섬기는 모습을 국민들이 목격했다. 이들처럼 대체복무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나라들은 그것이 실질적으로 국익에 기여하는 것을 지켜봤고 그 결과 국민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라는 질문에 그는 "대체복무제가 만들어지면 여호와의증인 신도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라고 답변했다.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가 종교에서 시작된 건 맞다. 그건 세계적 현상이다. 하지만 1, 2차대전 때부터 병역거부의 움직임이 있었던 영국과 미국의 경우, 여호와의증인 신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하지만 한국에선 가혹한 처벌과 군사정권 하의 고문과 구타를 겪으며 사람들이 병역을 거부한다는 걸 생각조차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당연히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많은 이들이 다른 결정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