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를 바라보는 시선과 갈등의 골

[주장] 제주 해군기지는 한국 것인가 미국-한국 것인가

등록 2018.10.23 16:27수정 2018.10.2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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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에서 열린 국제 관함식에 참석했다. 이날 제주가 평화를 위한 협력의 장이 되길 바란다는 연설과 함께 문 대통령은 강정마을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문 대통령은 마을 주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공동체 복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지난 11년 동안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빚어진 구럼비(바위) 파괴 등 환경 파괴와 주민 갈등 때문으로 강정마을 주민들에겐 깊은 생채기가 생겼다. 그 기간 동안 수십 명이 연행되고 잡혀갔다. 오래되고 깊어진 갈등의 골을 어떻게 치유하고 극복해나갈지, 문재인 정부는 시험대에 올랐다.

소통을 강조하는 정부답게 형식적으론 간담회 등을 진행했다. 하지만 간담회에 일부 강정마을회 사람들이 배제되었다는 점, 왜 꼭 국제 관함식을 강행했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선 주민들의 날선 비판이 여전하다. 그 가운데 외국 함정 2곳에서 기름까지 유출됐다.

필자 역시 지난 9월 중순, 강정마을을 다녀간 바 있다. 남북한 관계가 무르익고 평화에 대한 갈망이 한창이던 그때, 제주 해군기지의 국제 관함식이 예정돼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쪽에선 평화가, 한쪽에선 군사 전략이 실행되고 있었다. 과연 무엇이 평화이고, 평화를 위한 길인지 알 길이 없다. 주민들이 불행하다면 누구를 위한 평화이어야 할까.
 
페이스북에서 제주 해군기지에 대한 성격 규정으로 논쟁하고 있는 모습. 건전한 논쟁은 언제나 환영이나, 상대방을 비방하는 논쟁은 사양한다.
페이스북에서 제주 해군기지에 대한 성격 규정으로 논쟁하고 있는 모습.건전한 논쟁은 언제나 환영이나, 상대방을 비방하는 논쟁은 사양한다.페이스북(Seth)
 
제주 국제 관함식, 갈 길 먼 평화의 길

최근 오랜 동안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벌여온 외국인 뮤지션(Martin Seth. 한글명 이 산)이 페이스북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왔다. 이번 제주 국제 관함식에 대한 글을 퍼오며, 제주 해군기지가 '미국-한국 해군기지(US-ROK naval base)'라고 표현한 것에 대한 논박이다. 이에 대해 저널리스트인 미국인 2명이 왜 제주 해군기지가 미국의 영향에 있느냐고 비판했다. 강정마을에서 오래 활동해 와서, 그쪽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하는 말 아니냐는 것이다. 과연 제주 해군기지는 한국 것인가 미국-한국 것인가.

겉으로 보자면, 제주 해군기지는 분명 한국의 것이다. 한국의 돈이 투입됐고, 한국 해군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제주 해군기지는 한국에 있다. 그런데 군사시설이라는 것은 단순히 시설과 지리적 위치, 투입 예산만으로 그 성격을 규정하기가 힘들다. 가장 중요한 건 제주 해군기지가 무엇을 위해 사용되느냐이다. 제주 해군기지는 군사적 목적, 즉 자주 국방과 안보, 전쟁 시 필요한 전략적 거점으로 활용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절대 안 되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한 가정이 집 한 채 짓는다고 해보자. 그 가정에선 거주의 목적 이외에, 집이 있는 마을의 공동회관으로 쓰고자 한다. 이 집엔 누구나 수시로 드나들 수 있다. 특히 이 집은 재난이 일어났을 경우, 재난특별 보호소로 쓰는 것으로 약속돼 있다. 심지어 이 집을 지을 때, 공동회관과 재난특별 보호소로 활용하기 위해 국가에서 설계에 들어가야 할 항목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집 짓는 비용은 이 가정에서 투입했다. 집의 위치는 물론 이 가정이 소유하고 있는 땅이다. 이 집에서 자주 마을 회의와 재난특별 대비 훈련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이 집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적어도 국가-가정 공동소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2012년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기사 '제주해군기지가 미군기지라고 보는 이유'에선 제주 해군기지의 설계 과정에서 주한미군 해군사령관의 요구 사항이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 설계 과정에 관여한 것이다. 또한 제주 해군기지엔 미군 함정들과 각 나라 함정들이 국제 관함식 이외에 군사적 목적으로 자주 기항할 것이다. 한미 군사훈련이 실시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전쟁 시엔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 해군기지는 우리나라의 것인가, 아니면 미국-한국 공동소유라고 봐야 할까?

한미 공동으로 사용하면, 공동 소유 아닌가


제주 해군기지가 한국의 것이냐, 미국-한국 것이냐는 논쟁은 어찌 보면 굉장히 관념적일 수 있다. 하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상대방의 의중을 왜곡하는 식으로 논쟁이 이뤄져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논쟁의 대상이 한국인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제주 해군기지가 한미 공동소유라고 주장하는 건, 한반도에 있었던 전쟁의 비극,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자주적 국방과 안보, 앞으로 펼쳐질 통일 한국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모든 주장은 의도를 담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를 한미 공동의 것이라고 언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좀 더 거시적이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사안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거짓이네, 일부 과격 활동가들의 선전 행위라고 주장하는 건 트집을 잡아 깎아내리려는 억지에 가깝다. 그것도 저널리스트라는 이들의 행태라면 더더욱 용납하기가 어렵다.
#제주해군기지 #강정마을 #전시작전권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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