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6살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동안 돌봄은 내 삶의 화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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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6살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동안 돌봄은 내 삶의 화두가 되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지만 양가 부모님은 멀리 살고, 일가친척도 친구도 한 명 없고, 의지할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독박육아를 시작한 내게는 보육기관이 유일하게 돌봄을 함께 할 희망이었다.
둘째를 임신하고 돌봄을 혼자서 감당하기는 너무 벅찬 마음에 어린이집의 문을 두드렸다. 돌봄의 부담을 나눠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야 마땅했지만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학대를 당하는 건 아닐까. 말을 안 듣는다고 어디 골방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밥을 빨리 안 먹는다고 다 못 먹은 식판을 빼앗긴 건 아닐까. 낮잠을 안 잔다고 구박받진 않았을까.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문득문득 불안해지곤 했다.
처음 어린이집을 정할 때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가 어린이집 다니기 싫다는 이야기를 했다. 괜한 상상을 펼치며 기관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니기 싫은 이유가 여러가지 있을텐데 근거없는 의심을 하느니 아이에게 잘 맞는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적극적으로 여러 기관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여기저기 상담을 다니면서 차량을 타야하는 거리에 있지만 '좋은'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발품 팔고 어렵게 찾은 어린이집이었다. 다행히 옮긴 이후로는 아이가 너무 재밌게 잘 다녔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적응하고 시간이 흘렀다. 많은 친구들이 유치원에 갔다. 유치원으로 보낼지 계속 어린이집에 보낼지를 선택해야 했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 남았다. 판단 기준은 하나였다. 오랜 시간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가 쌓여 새로운 곳으로 옮기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돌봄 환경이 좋았고 아이도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다.
선생님들이 몇 년씩 근속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원장이 운영 비리를 저지르거나 교사 처우를 열악하게 한다면 양심적이고 좋은 선생님들이 더 나은 곳으로 떠나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자주 교체되는 곳은 안 좋은 기관일 확률이 높다는 선배 엄마들의 조언이 있었다.
집이 이사를 해서 차를 타고 왕복 1시간 거리로 어린이집이 멀어졌지만 계속 같은 곳으로 보냈다.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보육교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내린 결정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곳에 가면 또 다시 불신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싫었다. 새로 옮기는 기관이 이만큼의 만족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아이도 보육교사도 부모도 불행한 보육시설
지난여름에는 4살 어린이가 통학 차량에 7시간가량 방치되어 숨졌다는 소식으로 불안에 떨어야 했고, 아동학대 소식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또 터진다.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 좋은 선생님들과 돌봄을 나눠 하면서도 기관에 아이를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분노하거나 슬퍼할 일은 많다.
최근에는 11년 전 울산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던 이성민(당시 23개월)군이 소장 파열에 의한 복막염으로 사망한 '성민이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어린이집 원장과 남편은 성민이 복부를 발로 차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폭력 현장을 직접 목격한 성민이 형의 증언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상해치사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하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만 인정했다.
지난 12일 '추적 60분'에서 이 사건을 다시 파헤친 이후 원장 부부를 엄벌해 달라는 청원이 41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반면, 지난 13일에는 김포맘카페에서 아동 학대 의심을 받고 신상이 유포된 어린이집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맘카페에 어린이집 소풍에 간 자신의 조카가 교사에게 안기려고 했지만, 교사가 돗자리를 터는 데만 신경 써 아이를 밀치고 방치했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되었고, 이 글에 어린이집 교사를 처벌해야 한다는 동조 분위기가 주를 이루자 보육교사가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사건이다.
해당 기사에는 맘카페 엄마들이 선량한 어린이집 교사를 아동학대로 의심해 마녀사냥해서 죽음으로 몰았다거나 맘카페를 폐쇄하라는 등 비난여론과 함께 해당 글을 게시한 이모와 맘카페를 강력처벌 해야 한다는 청원도 잇따르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과장하여 퍼트리고 한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마녀사냥은 당연히 나쁜 거다. 그러나 해당 사건의 폭로자를 찾아내 똑같이 신상을 공개하고 처벌을 강력하게 한다고 이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까?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죄없는 보육교사를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취해야겠지만 단편적인 장치만으로 쉽게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엄마가 되면서 사회현상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감정이 복잡하여 한숨을 쉬는 일이 많아진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엄마들의 과민반응을 탓하기 전에 왜 엄마들이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일에 과한 반응을 보이며 분노하는지를 짚어보면 좋겠다. 특정 맘카페나 일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를 잃은 보육기관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