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각들이 모여서 컵이 되는 현상을 목격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얼마나 어려우냐 하면, 우주가 몇 번쯤 소멸하고 다시 태어나면 한 번쯤 볼 수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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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왜 시간은 처음에 그렇게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로 시작했단 말인가. 태초의 시간이 '하필' 그렇게 낮은 엔트로피로 시작한 사건은, 마치 백만 개의 흰 공과 한 개의 검은 공이 섞여 있는 주머니에서 공을 하나 꺼냈는데 그것이 검은 공인 사건과 같이 확률이 극히 낮다.
우주가 우연적으로 발생했다면, 처음에 시작할 때부터 엔트로피가 대단히 높은 상태에서 시작했을 확률이 가장 높다. 모든 것이 균일하게 섞여 더 이상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우주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결론이다.
빅뱅을 지지하는 증거는 많다. 무엇보다 우주배경복사라는 아주 강력한 증거가 우주 도처에 깔려 있다. 그래서 빅뱅이 사실이라고 하면, 왜 그런 이상한 초기 조건이 주어졌는지에 대해 과학자들은 설명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소위 '인류 원리'다. 우주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인간이라는 생물이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주의 기원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존재도 없었을 것이다. 엔트로피가 높은 '균일한' 우주는 물론이고, 빅뱅에서 출발하되 인플레이션을 거치지 않은 우주라도 오늘날의 우주가 될 가능성은 없다. 우주배경복사에서 관측되는, 초기 우주의 미세한 불균일성이 없었다면 은하도 태양도 지구도 없었을 것이다.
시간의 초기 조건에 대해 질문하던 과학자들은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묻기 시작했다. 그것이 우리 우주의 시간이든 아니든, 빅뱅 이전에 대해 알게 되면, 그것에 기인한 우리 우주의 기이한 초기 조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애덤 프랑크가 쓴 <시간 연대기>에 소개된 몇몇 학자들의 이론을 살펴보자.
태초 이전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