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2012)의 한 장면. 극중 음악감독 유일한(김래원 분)과 아역배우 영광(지대한 분). 영광은 한국-필리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극중에서도 영광은 많은 편견과 차별을 겪는다. 실제로 배우 지대한은 한국-스리랑카 다문화 가정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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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는 대체 한국인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정의할까. 교과서는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다섯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효도 정신. 둘째, 선비 정신. 셋째, (조상의 문화에서 기인한) 자연 애호 정신. 넷째, 풍류 정신. 다섯째, 평화 애호 정신과 국난 극복 정신이다. 엄밀하게 말해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 존재 이전의 민족에 기반한 개념들이다.
한국인 대다수가 한민족이고 국토의 역사가 한민족의 역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곧 한민족은 아니다. 한국인의 정체성 일부가 한민족의 정체성인 것은 당연하나, 한국인의 정체성을 모조리 한민족의 정체성으로 채우는 것은 현대국가의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이같이 은밀하지만 무책임한 교과서 서술은 생각의 기저에서 이주민과 다문화를 배제하며, 나아가 사회의 편견을 부추기게 된다. 다문화 사회인 오늘날, 진정 도덕교육이 사회 윤리 확립에 공헌하고자 한다면, 서술하는 한국인 정체성 중 적어도 한둘은 민족을 떠나 대한민국 자체 내에서 찾아야 옳다.
교과서가 제시한 "선비 정신"과 "풍류 정신" 등은 현대 한국인이 지켜야 할 정체성이라기에도 오늘날 너무 거리가 멀다. 교과서는 두 정신의 사례로 각각 조선 맹사성과 신라 화랑을 소개하는데, 이 역시 21세기 세계화에 임하는 한국인의 정체성으로서는 다소 고리타분한 사례다.
그보다는 평화와 인권 정신 등 당면한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대한민국 헌법에 근거하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게 더 적절하면서도 현실에 유의미할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일본제국주의와 군부독재 등 불의에 맞서 온 현대사로부터, 정의로운 항거 정신을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끌어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처럼 한민족이 아니라도 한국인이라면 모두 공유하고 확립할 수 있는 정체성이야말로 세계화 시대의 학교 현장이 교육해야 할 내용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은 더 이상 세계화의 대상도, 교류할 타자도 아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엄연한 한국인이요 '우리'다.
귀화인이 늘어나는 다문화사회이자 이들에 대한 편견이 심각한 현실에서, 교과서는 보다 현실과 밀접한 문제의식을 갖고서 책임 있는 서술을 지향해야 한다.
※ 본문에서는 줄곧 '다문화'란 말을 사용했으나 '상호문화'가 더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음을 밝힙니다. '다문화'는 '한국문화를 제외한 나머지 문화들'로 수직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상호문화'는 한국문화 역시 다른 문화와 상호교류 하는 개념으로, 보다 수평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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