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방 벽면에는 동아일보사가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1931~1934년 네 번에 걸쳐 벌인 ‘브나로드운동’ 포스터가 소개됐다. 브나로드는 ‘민중 속으로’를 뜻하는 러시아 말로 당시 농민들에게 한글을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열렸다.
윤종훈
한글날이 만들어진 데는 학술연구단체 '조선어연구회'의 공이 있었다. 1921년 장지연, 이윤재, 최현배 등이 조직한 '조선어연구회'는 한글 연구와 보급을 목적으로 활동했다.
전국 주요 도시 10여 곳에서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중소 도시에서는 교양강좌를 열어 우리 말과 글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보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1926년에 '가갸날(한글날의 옛 이름)'을 제정하면서 기념행사를 갖도록 하여 한글 보급과 대중화에 기여했다.
1931년에는 '조선어연구회'가 '조선어학회'로 확대 개편되면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 <표준어사전>,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만드는 등 우리말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우리말 큰사전>의 편찬 작업을 하던 '조선어학회'는 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면서 관계 인사들이 구속되고 고문을 받았다. 이때 작성한 원고는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지면서 일본 경찰에 압수됐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면서 관련 인사들이 풀려나고 그해 9월 경성역 조선통운창고에서 원고를 발견했다. 이 원고를 바탕으로 한글학회는 1947년에 <조선말 큰사전> 2권을 간행했고, 3권부터는 <큰사전>이라는 이름으로 1957년까지 6권을 간행했다. 우리 한글이 지나온 역사는 파란만장한 격변의 현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