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테와 치첸이트사 길가 곳곳에는 커다란 이구아나가 기어다녔다.
유최늘샘
어린 시절, 봉지과자에 하나씩 들어 있던 동그란 플라스틱 딱지를 모았던 기억이 있다. 딱지의 주제가 세계의 유적지였고 그중에는 '멕시코, 치첸이트사'의 그림도 있었다. 그 피라미드가 눈앞에 나타났다. 서기 450년경 지금의 과테말라 지역에서 이주해온 마야 족의 한 부족인 이트사 족이 처음 건설을 시작했고, 1000년경 멕시코 북부에서 이주한 톨텍 족이 200년에 걸쳐 완공했다는 세계적인 유적지. 2007년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마야의 달력과 우주관을 형상화한 쿠쿨칸(마야의 뱀신)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신전, 천문대, 수녀원, 경기장, 기우제를 지내던 80미터 깊이의 우물 '세노테'를 둘러보았다. 또 치첸이트사는 인간의 심장을 올려놓았다는 재단 차크몰 chac mool 이 있는 곳이다. 해골 조각도 유난히 많다. 고리에 공을 넣는 경기의 승부에 따라 선수들은 산재물이 되었고 우물에는 주로 여자아이들이 던져졌다고 한다. 인신공양이 이루어지던 종교와 정치, 사회, 문화란 어떤 모습과 감정이었을지,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먼 옛날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유적지,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세계문화유산, 미디어와 책에서 추천하고 남들이 얘기하는 장소, 그런 수많은 곳들 중 하나인 치첸이트사를 '직접 보았다'라는 만족감은 있었지만 엄청나게 놀랍거나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이트사 족의 땅이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로 가득찬 정오 무렵 우리는 메리다로 가는 버스를 탔다.
여행자의 천국과 거리의 아이들
16세기부터 유카탄 주의 중심지였던 메리다는 활기차고 예스러웠다. 광장과 시장을 실컷 구경하며 며칠을 지내고, 야간 버스로 열두 시간을 달려 2200미터 산맥에 자리한 작은 도시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로 이동했다. 고도가 100미터씩 높아질 때마다 온도는 0.6도씩 떨어지니, 바닷가 유카탄과 이곳의 온도 차이는 약 13도. 이게 얼마만의 선선한 날씨인지,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변했다.
산크리스토발은 식민지 시대 광산 개발을 위해 형성된 도시로 지금도 스페인식의 좁은 자갈길과 붉은 지붕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과테말라와 국경을 마주한 치아파스 주의 중심지이고 주민 대부분이 마야 족이다. 광산업이 주산업이지만 1974년 정부에 의해 역사 기념 도시로 지정된 후 관광업도 성장하고 있다. 숙박비와 식비가 저렴하고 날씨가 좋고 볼거리가 많아서 장기간 머무는 여행자들이 많다. 나와 친구도 일정을 늦춰 일주일을 머물렀다. 매일 해 질 녘이 되면 중심가 차 없는 거리에는 각양각색의 여행자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수공예품을 팔거나 거리 공연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