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에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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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동태국', '북어국'을 각각 '동탯국', '북엇국'으로 써야 한다는 사실은 국어 규범이 대중의 언어생활과 상당히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한글 맞춤법 4장 4절 30항은 '순우리말이 포함된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 앞에서 소리가 덧나는 경우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어 '동태국'과 '북어국'은 사이시옷 규정이 적용된다.
저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복수 표준어의 폭넓은 활용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2011년 8월 '간지럽히다', '맨날', '허접쓰레기' 등과 같이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되지만 표준어 대접을 받지 못한 단어 39개를 표준어로 지정한 바 있다.
최경봉 교수는 언어 현실을 인정해서 이 같은 복수 표준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이시옷 규정을 다시 예로 들면 '동태국/동탯국', '북어국/북엇국'을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말은 곧 맞춤법, 띄어쓰기 등의 각종 국어 규범을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의 관습과 언어 현실을 고려해 조정해야 할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표준어는 학문이 아니라 생활의 문제"
돌이켜보면 나는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는 대중을 질타하는 기사에서 느껴지는 엘리트주의, 계몽주의가 싫었다. <한글민주주의> 속 표현처럼 "표준어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생활의 문제가 아닌 학문의 문제가 되어버린"(61쪽)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풀어쓰기' 주창자들이 그랬듯이 그들의 주장에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고 해도 소수의 전문가, 정치가가 '올바른 우리말'이 뭔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대중들이 그에 따르지 않는다고 꾸짖는 듯한 행태가 불쾌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그런 기사를 볼 때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한글은 일부 학자나 정치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중이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도구이자 모두의 소유물이다. 표준어를 결정하는 것은 학문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다. '올바른 우리말'이 무언지를 결정하는 이들은 대중이어야 한다."
나는 그런 생각이야말로 한글날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전문가가 결정한 대로 그저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대중 스스로 한글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우리말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올바른 우리말'을 함께 만들어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한글의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자세가 정말 한글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한글의 의미를 다시 되짚는 자세 아닐까?
그래서 올해 한글날에는 이제껏 매번 보던 '한글 파괴' 현상을 개탄하는 기사와는 좀 다른 기사를 보고 싶다.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는 대중을 질타하는 기사가 아니라 대중이 현행 국어 규범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한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말하는 기사 말이다.
한글민주주의
최경봉 지음,
책과함께,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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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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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한글 파괴' 기사는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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