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과 신하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의 ‘다산(정약용)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옛날 왕들도 지금의 정치인들처럼 돈을 지출하는 방법으로 신하나 귀족들의 환심과 충성심을 확보하곤 했다. 양반 귀족들이 임금의 돈 문제를 공격한 것은, 자금 사용에 대한 압박을 통해 왕권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조선시대 임금들한테도 내탕금(內帑金)이라는 업무추진비가 있었다. 임금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양반 귀족들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간에 이 돈의 용처를 따지고 들곤 했다. 임금의 기를 꺾을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례 중 하나를, 음력으로 인조 3년 3월 4일자(양력 1625년 4월 10일자) <인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인조는 신하들과 함께 경연(세미나)에 참석했다. 즉위한 지 얼마 안 되는 이 임금을 향해 정경세란 신하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는 인조의 할아버지인 선조(재위 1567~1608년) 때 일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조대왕께서 즉위하신 해에 내탕금을 사용해 서재를 지으시자 옥당(홍문관 고관들)이 차자(간이 상소문)를 올려 충언을 했지만, 선조께서 듣지 않으셨습니다."
갓 즉위한 선조가 내탕금으로 서재를 지으려 하자, 홍문관 관원들이 "하지 마시라"며 말렸다는 것이다. 선조가 사용한 자금은 순전히 임금 개인용이었다. 그런 돈으로 서재를 짓는 일에까지 양반 귀족들이 왈가왈부했던 것이다.
선조의 업무추진비 사용을 막고자, 신하들은 "전하께서는 지혜가 모자랍니다"느니 "전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느니 하는 말들을 극히 완곡한 어법으로 포장해서 내뱉었다. 불법적인 자금 지출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쏘아붙인 것은, 임금의 자금 사용을 견제해야 한다는 정치적 목적에 과도하게 집착한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선조는 개의치 않았다. "선조께서는 듣지 않으셨습니다"라는 정경세의 말처럼, 선조는 업무추진비 집행을 강행했다. 신하들이 비판을 가하는 목적이 재정 절검이 아니라 왕권 견제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정경세가 인조 앞에서 옛날 일을 거론한 이유가 있다. 인조의 내탕금 문제를 거론할 목적에서였다. 선조처럼 고집을 피우면 안 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임금의 내탕금 사용과 이를 막았던 신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