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을 몰라도 현대시작법박진성 지음, 미디어샘 출판
미디어샘
이처럼 현대시를 읽고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시 쓰는 방법'을 들고 나온 시인이 있다. 2014년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 2015년 <시작작품상>을 수상한 전업 시인 박진성이다. 17년 동안 시인으로 활동했던 박 시인은 <김소월을 몰라도 현대시작법>을 통해 시를 쓰려는 이들과 시를 쓰고 있는 이들에게 작고 사소한 조언들을 모아 전하고 있다.
시작법을 다루는 이 책은 문장들을 '시'처럼 연과 행으로 편집하여 시집을 읽는 느낌을 준다. 내용은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담백하여 손에 잡으면 금세 읽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김소월을 몰라도 현대시작법>. 제목을 보며 드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소월이 세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국민시인이기는 하지만, 현대시의 아버지하면 정지용인데, 왜 하필 김소월일까? 좀 더 나아가 김수영이면 안 되나 하는 질문도 나올 법하다.
박 시인은 김소월이야말로 현대시에서 '한(恨)'이라는 민족 정서를 쉽게 잘 표현했기 때문에 택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시가 좋아하는 말들' 중에 '너'가 있다는 박 시인의 진술을 통해 김소월이 '님', '당신'과 같은 말을 좋아해서 택했을 거라고 유추해 볼 수도 있다.
"불특정 2인칭 "너"를 시는 좋아합니다. 시의 모든 발화는 나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너, 라고 쓰는 순간 그 안에는 내가 포함됩니다." - 60쪽.
<김소월을 몰라도 현대시작법>은 시가 갖고 있는 특징을 쉽고 짧게 설명한다. 말을 절약하는 대신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명은 저자의 역량을 가늠하게 한다. 그와 함께 시를 쓰는 이의 윤리를 말하며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읽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함부로 시 안으로 가져온 타인의 고통은 그 시 시 자체의 재앙일 뿐만 아니라 자의식의 재앙이기도 하겠지요. 시의 윤리와 미학은 어쩌면 착한(착하고 싶은) 시선으로 쓸 때 얻어지는 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을 때 겨우겨우 시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 99쪽
혹자는 시인이 하고 싶은 말과 비유, 상상을 간신히 참아내는 일을 '자기검열'이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쓰면 안 되는 부분을 스스로 참고 제어하는 일'을 시를 쓰는 일의 시작이라고 하는 시인에게서 시인의 윤리, 타자에 대한 따뜻하고 겸손한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오늘날 가난한 누군가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빈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며 동정심을 일으키는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가 넘쳐난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몸에 힘없이 풀린 눈동자를 한 아이들에게 뭔가를 떠먹여주며 감성을 자극하는 모금 방식은 일반적이다.
그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모금 단체들은 '타인의 고통'을 소환한다. 시인은 최소한 빈곤 포르노처럼 내가 보고 있는 슬픔, 타인의 고통을 멀리서 관망해서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타자'의 자리를 생각하며 글을 다듬는 일은 쉽지 않다. <김소월을 몰라도 현대시작법>은 그런 '나'를 '우리' 혹은 '너'의 자리로 '시'가 이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책을 덮으며 내 주변에 '너'의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는 '나'를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다.
김소월을 몰라도 현대시작법
박진성 지음,
미디어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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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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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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