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반구정에서 임진강 풍경화를 그리는 춘하씨.
유현미, 낮은산
자식들 얼굴을 그려달라 했더니
작년에 올라오셨을 때는 더 쇠약해지셔서 그림 그릴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역시 아파트가 문제. 거동이 불편하니 어디 놀러가기도 쉽지 않고, 안에만 있으니 심심하고. 그래서! 이번에는 자식들이 나중에 선물로 간직하려고 얼굴을 그려 주세요, 하고 청하였다.
수채화는 이젠 너무 힘들고, 그리기 비교적 편한 크레용과 색연필을 쓰는 정도로. 첫 모델은 머물고 있던 집의 주인인 둘째 사위 당첨. 연필을 들고 쪼그려 앉은 93세 장인어른 앞에 둘째 사위가 마주앉았다. 연필로 먼저 그리고 색연필로 다시 선을 따고 넓은 면은 크레용칠. 결과는?
따뜻하고 재미있고 정직하고 독특한 둘째 사위 초상화 탄생!
계속 그리기로 했다. 직접 모델로 설 수 없는 인물은 사진으로 대신했다.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 그리려고도 하셨지만.
"아, 되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어.
그만하면 안 될까?
안 되겠지.
누구는 그리고 누구는 안 그리면
서운하지 않갔냐.
공평하지 않지."
결국 다 그려내셨다.
북에 두고 온 딸, 숙녀의 얼굴
다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허전하다. 춘하씨는 북에 두고온 딸을 떠올린다. 그리기로 한다. 이름은 숙녀. 춘하씨가 1947~1948년께 황해도 재령읍에서 지낼 때 집주인 딸 중에 이름에 숙녀인 아이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좋아서 나중에 장가들어 딸을 낳으면 숙녀라고 해야지, 했다는. 겨우 갓 돌이 지났을 때 헤어지게 된, 이렇게 영영 헤어지게 될 줄은 몰랐던 그 아기, 숙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