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앵무와 토끼, 기니피그가 살고 있는 철장수목시설 대신 콘크리트 벽면에 풀잎이 그려져 있다.
김벼리
사랑앵무는 청결한 환경이 기본이며,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지능이 높은 조류다. 따라서 앵무새의 새장은 행동풍부화를 위한 다양한 놀이 수단이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밥통과 물 외에는 어떠한 것도 없다. 새장에 최소한으로 달려있어야 하는 횟대조차 없다. 앵무 새장 밑에는 기니피그와 토끼를 합사한 비좁은 철장이 있다. 흙이나 웅덩이, 수목 시설 등 적절한 사육시설은커녕 동물이 몸을 숨길 곳도 없다.
어쩌다가 이런 환경이 그대로 방치된 걸까. 이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21일 경기도의 한 수목원에 전화를 걸었다. 이 수목원 관계자는 "수목원 내에 조류원 담당이 따로 없어서 시청 관리자를 바로 연결해주겠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토요일이라 전화가 연결되진 않았다.
이 수목원의 열악한 환경은 이미 언론의 지적을 받은 바 있다. 2016년 9월, 한 언론이 <OOO수목원 관상조류원 관리 엉망>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보도 이후 2년이 지났지만, 개선된 부분은 없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물 보존과 연구를 위한' 수목원 내 동물원 운영은, 사실상 관람객 유치를 위한 전시 목적으로 바뀐지 오래다. 앞서 소개한 세종 소재 수목원의 경우도 어린이들의 생태학습과 관람객에 대한 볼거리 제공을 목적으로 동물마을을 개장했다.
경기도의 한 수목원도 관람객의 관찰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다 보니 수목원 내 동물들의 삶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열악하다. 통상 공립 수목원의 경우 입장료가 대부분 무료에 가까우리만큼 저렴하다. 동물들을 위해 쓸 수 예산이 많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여러 지역에 산재돼 있어 시설과 동물들 상태에 대한 관리 감독도 어렵다.
우리의 관심에 죽고 사는 이들
동물의 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열악한 환경, 아무런 자극 없는 수 년의 무료한 생활 그 안에서의 스트레스를 우리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동물원은 각 동물들의 생태적 환경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며 무료함을 달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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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목원의 독수리가 철장 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동범위가 하루 200㎞를 넘는 독수리가 철장 안에 갇혀있다.인간 판단하에 공간을 넓힌다 한들 이 독수리를 만족시킬 수 없을 거다. ⓒ 김벼리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을 충족해줄 수 있는, 책임질 수 있는 경우에만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적절한 공간 조성에도 허덕이는 공립 수목원들이 동물들의 삶과 행복을 책임져줄 수 있을리 없다.
그나마 대형동물원의 경우 공립수목원 동물원보다 형편이 낫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여름에 시베리아 호랑이에게 인공눈을 뿌려준다고 한다. 에버랜드엔 동물들을 위해 나무그늘과 폭포 등이 설치돼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대전 오월드도 동물 우리마다 스프링클러 시설 정도는 갖추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게 자유를 얻는 것보단 못하다. 그러나 대형동물원의 경우 이번처럼 동물원 문제가 이슈 될 때마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재정상황이 수목원과 같은 소형 동물원보다 나으며, 동물보호단체와 수천 명의 관람객의 관심과 시선이 닿기 쉽다.
공립 수목원의 경우 어떠한가. 처음 설립 당시에서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다. 수목원 내에 동물원을 설립하는 것도, 동물 복지에 대한 것도 별다른 규정이 없다. 이 많은 '동물나라' '동물농장' '동물마을'들을 정기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것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수목원에 온 관람객들이 그 안의 작은 동물마을에 세심히 신경 쓰고 따져 묻기도 어렵다. 수목원의 동물들에겐 감시자가 없다. 변화의 물결에 탑승하기 어렵다.
책임질 수 없다면 멈춰라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는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퓨마 호롱이의 죽음을 통해 동물들의 갇힌 삶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또렷히 인지하게 됐다. 이 세상의 모든 동물원이 없어졌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어렵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아주 최소한의 고통만 받길 바란다. 관람객 한 명 더 유치하기 위해 곰이나 원숭이, 앵무새와 같은 지능 높고 사회성 발달한 동물들을 관리도 허술한 수목원에 가둬 놓아야 할까. 이를 우리는 허락해도 될까? 수목원에 어울리는 건 쇠창살과 콘크리트 벽에 갇혀있는 동물이 아닌, 풀잎과 나무 사이에서 뛰노는 동물들이다.
더 나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기폭제는 늘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죽어야만 변하는 사회는 암울하다. 슬픔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 이전에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더 빠르게 생태동물원으로 바꿔나가라고 요구하자. 그럴 능력이 없다면 동물원을 만들 수 없게 하자. 그렇게 줄여나가자. 이게 그들을 가둬놓고 멋모르고 즐기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정말 최소한의 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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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퓨마보다 더 '처참하게' 사는 동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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