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기념관대방동 유한양행 빌딩 1층에는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 선생을 기리는 유일한기념관이 있다.
양승렬
유한양행의 설립자(1926)인 유일한은 1991년 중앙대에서 주는 '참기업인상'의 1회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참기업인의 표상으로 통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천한 인물이자 1969년 기업의 제일선에서 은퇴할 때는 혈연관계가 없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김으로써 전문경영인 시대의 서막을 연 인물이기도 하다.
3대·4대 경영세습이 일반화돼 있는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보기 드문 인물이다. 기념관에는 유일한의 이러한 기업가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어록'도 전시돼 있다.
유일한은 독립운동가의 삶을 산 인물이기도 하다. 1904년 10살의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유일한은 1909년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세운 한인소년병학교에 입학한 후 최연소로 졸업했다. 미시간대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는 3·1혁명이 일어나자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에서 <한국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석명(釋明)하는 결의문>의 작성은 물론 대회장에서 직접 낭독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유일한은 1941년 4월 해외 독립운동단체들이 공동으로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한 해외한족대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는데, 대회 결과 창설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집행부 위원에 선임돼 독립운동자금 조성에도 크게 기여한다.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으로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미 육군전략처(OSS)의 한국담당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1945년에는 50이 넘은 나이임에도 OSS의 후방교란 작전인 냅코작전(NAPKO Project)에 1조 조장으로 한반도에 파견되기 위한 특수군사훈련까지 받지만, 일본의 패망으로 실행에는 이르지 못한다. 유일한기념관에는 선생의 이러한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5년에 추서된 건국훈장 독립장이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