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정록>.
서해문집
<북정록>에 대한 최초의 번역서는 1980년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박태근의 <국역 북정일기>이다. 이에 뒤이어 38년 만에 새롭게 나온 또 다른 번역서가 지난주 15일 발행됐다. 서해문집이 펴낸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의 <북정록>이다. 근 40년 만에 <북정록> 번역서가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책에서 계승범 교수는 '나선 정벌' 대신 '흑룡강 원정'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안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악행을 징치한다는 뉘앙스가 담긴 정벌이란 용어가 부적합하다는 이유다. 원정(遠征)에도 정벌(征伐)의 '征'이 들어 있지만, 정벌처럼 선악의 뉘앙스를 명확히 풍기지 않기 때문에 흑룡강 원정이란 용어를 선택한 듯하다.
<북정록>은 일기이지만, 이동 중에 작성한 것이라 기행문의 성격도 띠고 있다. 신류는 군영에서 벌어지는 일뿐 아니라, 지나가는 지역의 종족이나 풍습도 기록했다. 17세기 중반 두만강 북쪽 지역의 문화와 풍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기록을 남겨둔 것이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1개월 반 정도 지난 음력 효종 9년 5월 20일(양력 1658년 6월 20일)이었다. 부대는 송화강 유역에 체류 중이었다. 날씨는 맑았다. 이날 일기에서 신류는 '왈가 오랑캐'라는 종족에 관해 썼다. 달력도 없는 특이한 종족이라 관심이 갔던 모양이다.
"자기 나이도 모르고, 날짜가 몇 해, 몇 달, 며칠인지도 모르다. 성질은 매우 포악해 조금만 불만이 있어도 활을 당겨 쏴버린다. 심지어 부모형제에게도 손찌검과 칼질을 해대는 자들로서 거침이 없으므로 청나라 장수도 두려워 대비한다고 한다."
날씨가 맑았던 음력 7월 27일(양력 8월 25일) 일기에는 소인국이란 지명이 등장한다. 퍅가부락이란 종족에 관해 쓰다가 나온 이야기다.
"퍅가부락은 바로 견(犬)부락과 닿아 있는 오랑캐 마을로, 소인국(小人國)과 접경한 지역이다."
소인국 이야기는 옛날 문헌에 종종 나온다. 일례로,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1602년 베이징에서 제작한 <곤여만국전도>라는 지도에도 왜인국 즉 소인국이 등장한다. 지도에는 "이 나라 사람들은 키가 한 자 정도에 불과하며, 5세에 자식을 낳고 8세에 늙는다"라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해설이 붙어 있다.
남유럽 사람인 마테오 리치가 말한 왜인국은 북유럽에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남유럽과 북유럽의 교류가 적고 상호 이해도가 낮았기 때문에 저런 황당한 기록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북정록>에 소인국이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두만강에서 북쪽으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소인국이 있다고 믿었다는 것은 그 지역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적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신류가 두만강 북쪽을 다녀와 <북정록>을 남겼으니, 당시에는 꽤 신선한 기록이었을 것이다.
적이 누군지도 모른 채 싸우러 나간 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