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이다 포스터 장면
뮤지컬 아이다
아이다는 국내에서는 옥주현씨가 출연한 포스터를 한 번쯤은 본 적 있으시죠?
베르디는 1813년 이탈리아의 부세토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뛰어난 음악적 DNA가 아니라 지독한 가난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지만, 정식 교육은 꿈도 꿀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저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갈증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낭중지추라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뛰어난 재능으로 고향 마을에서 제일 잘 나가는 '교회오빠'가 되었다죠. 허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베르디는 피아노 잘 치는 '교회오빠'로 살아가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처지였다고 해요. 하지만 그의 인생에 키다리 아저씨가 등장을 하니, 그의 이름은 안토니오 바레치. 훗날 베르디의 장인이 되는 지역의 독지가였습니다.
"오늘부터 제대로 된 피아노 레슨을 내가 시켜주겠네.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자네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게나."
베르디는 이제 최저시급을 받으며 알바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키다리 아저씨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그의 피아노 실력은 수직 상승하였고, 기고만장해진 그는 희망에 찬 채 밀라노 유학 길에 오르게 되었죠.
'내가 시골에 묻혀 지내서 그렇지 도시 아이들에게 재능에서 뒤질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시골 쥐의 매서운 면을 제대로 보여주마.'
여기서 잠깐 역사상식 짚어보고 가겠습니다. 이 당시 이탈리아는 외세의 침략에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였습니다. 로마제국의 후손들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지요. 그래서 베르디가 밀라노로 갈 때는 여권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건 우리의 주인공 베르디는 청운의 꿈을 안고 밀라노에 입국(?)을 했는데요. 하지만 밀라노 음악학교에 피아노 특기생으로 입학하기 위해 실기시험을 마치고 난 후,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마치 영화 <위플레쉬>의 빡빡머리 플래처 같은 교수님의 혹평으로 말이죠.
"이봐 시골 촌뜨기! 너는 우선 서류심사에서도 탈락인 걸 내가 실기 시험이나 보게 해준 거야. 18살이면 우리 학교 입학 기준 나이에서 이미 4살이나 넘겼어. 재능도 없고, 오직 눈빛만 살아 있어. 피아노가 오기와 끈기로 잘 치게 된다면 이 세상 모두가 쇼팽이 되었을 걸? 너는 또래는 물론이고, 한 세대 아래 아이들보다 나을 게 없어. 헛된 꿈 꾸지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자네를 위해서 좋을 거야."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요? 피아니스트의 꿈을 일찍 포기한 베르디는 작곡가로 성공하기로 결심하고, 밀라노에서 작곡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밀라노에서 짧은 유학 생활을 마친 베르디가 데뷔 음악회를 열기 위해 고향으로 귀향을 하게 되었는데, 무명의 신인 작곡가가 밀라노라는 대형마켓에서 데뷔하는 게 쉬웠겠어요? 그의 데뷔 무대는 영원한 키다리 아저씨 안토니오 바레치의 집 정원이었습니다.
"베르디는 전생에 무슨 공덕을 쌓았길래 저런 후원을 받나 몰라? 듣자 하니 바레치가 자기 딸의 음악 선생으로 베르디를 붙였다고 하던데."
"말이 음악 선생이지 결혼으로 가기 위한 예비 관문이지 머. 부럽다! 베르디."
주변의 시샘에도 불구하고 베르디는 바레치의 딸과 결혼에 골인하고, 장인의 확실한 후원을 받고 다시 밀라노 유학 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아니 장인 어른! 다시 한 번 밀라노에 가서 도전을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이제 저도 애 둘 딸린 유부남입니다. 오직 음악에만 승부를 걸어서 남 보란 듯이 성공해서 금의환향 하겠습니다."
모두가 작곡가로서의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