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리생선가게 한 켠에 줄에 걸린 채 말라가는 명태코다리.
김민수
명태는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생선이다. 바다에서 잡아온 명태는 생태로 국거리로 먹기도 하지만, 보통 할복을 통해 내장과 부산물을 빼내고 건조작업을 했다. 명태 할복을 '명태를 떼긴다'고 했다. 보통 명태 할복과 건조 과정에서 나오는 명란은 명태 주인이, 창난과 곤지는 할복하는 사람이, 간(애)은 덕장 땅 주인이 갖는다. 명태 아가미(서거리)가 없으면 마른 명태가 볼품이 없기 때문에 따로 떼어내지 않는다. 밤늦게까지 명태할복을 마치고 곤지와 창난을 집에 가져와서는 창난은 일일이 내장 속을 다 훑어내고 손질해서 물에 담갔다가 장사꾼에게 넘겨 팔아 할복비를 충당했다.
보통 명태를 할복해 나오는 부산물 중 명란과 창난은 젓갈의 재료로 젓갈공장으로 가고, 애는 간유공장으로 갔다. 명란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최고급 식품으로 내수만이 아니라 일본에도 다량 수출되었다. 해방 후 1959년부터 명란젓이 일본으로 수출되어 외화벌이에 큰 효자 역할을 했다. 속초에는 이쁜이식품을 비롯해 다수의 명란 가공공장이 있었다. 명태가 연안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수입 명란으로 젓갈 생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등잔불도 밝히고 비타민도 추출한 명태애
명태 눈알을 먹으면 눈이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명태에는 시력을 좋게 하는 비타민A와 E가 풍부하다. 보통 바닷가에서는 명태의 간(肝)을 애라고 부른다. 명태애는 기름이 풍부해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명태 애기름으로 등잔불도 붙였다. 그을음이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양제인 '간유구'는 이 명태애기름으로 만들었다. 명태애에는 대구보다 비타민A가 3배 이상 많다. 예로부터 야맹증이라든지 눈이 침침할 때는 명태애를 먹었다. 1962년 통계자료를 보면 당시 속초 청호동 일대에 간유공장(애공장)이 몇 곳 있어, 연간 명태간유 1275드럼, 오징어간유 374드럼을 생산했다.
명태 간유가공을 하는 공장 중에는 유한수산공장이 규모가 제일 컸다.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가 한국전쟁 중에 간유에서 비타민을 추출해 정제하는데 성공하여, 1960년 속초에 어간유제유소를 세웠다. 이 공장은 1962년에는 유한수산공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간유 가공만이 아니라 가공수산물 수출에도 한 역할을 했다. 1966년 통계를 보여주는 제5회 속초시통계연보 지역내 사업체에는 조양동의 유한수산속초공장(대표 유일한)은 종업원 132명, 청호동 동창실업은 종업원 95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명태애는 기름이 많아 프라이팬에 올려 볶으면 기름이 빠진다. 기름이 빠진 애는 건져서 반찬을 해 먹고, 남은 기름에 건빵을 넣고 튀겨 애건빵을 만들어 먹었다. 과자 한봉지 사기도 어려운 시절, 명태 애기름에 튀긴 애건빵은 바닷가 아이들에게 맛있는 간식거리였다.
꾸덕꾸덕 적당히 마른 명태 '코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