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전 카페에는 커피를 내리는 향기와 재즈의 선율만이 흐를 것이라는 환상이 그곳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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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카페에 갔다. 조용히 생각하며 써야 할 글이 있었다. 평일 오전 카페에는 커피를 내리는 향기와 재즈의 선율만이 흐를 것이라는 환상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대로변 건물 1층에 들어선 예쁜 카페다. 주변에는 아동 교육 기관들이 있다. 마침 아이들 등원 시간이었나 보다. 마중을 마친 엄마들이 삼삼오오 카페 테이블을 여럿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일에 집중했지만, 귀가 열려 있었다는 게 함정이었다. 이 팀 저 팀의 대화가 두 귀로 흘러들어오는 게 아닌가. 특별히 발성 좋은 사람들이 있어 잘 들리기도 했지만.
여러 테이블에서 이뤄진 그들의 대화는 비슷한 패턴으로 흘렀다. 일단 아이들 얘기로 시작했다. 엄마들은 서로의 아이들을 칭찬했고 자기 집 아이가 칭찬받을 때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남편 얘기로 넘어갔다. 자랑인가 싶었는데, 흉이다. 이어 "자기네 집은 별거 아냐, 우리 시댁은 말이야"라며 주제가 '시월드'로 넘어갔다. 자연스럽게 추석 얘기로 이어졌다.
"자기넨 언제 내려가?"
"당일에 올라올 수 있겠어?"
시댁이 먼 곳에 있어 최소 1박을 해야 한다는 어떤 이의 대답에 다른 엄마들이 함께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그러곤 명절 준비 걱정과 시댁 풍경 얘기가 길게 이어졌다. 주로 시어머니나 손위 동서에 관한 얘기겠지 했다. "글쎄, 우리 시아버지는..."이라는 얘기가 들린 순간 한쪽 귀가 확 커졌다. 몸도 그쪽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 나는 시아버지다. 지난해 말에 아들이 결혼했다. 아직은 시아버지 혹은 "아버님"이라고 불리는 게 낯선 초보 시아버지다. 사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시아버지로 신분이 바뀌었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 시어머니가 된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색해했다.
그렇지만 이미 28년 전 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부부는 언젠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될 운명이었다. 잊고 있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아들이 사랑한 여인을 우리도 사랑해주자고.
직장 동료인 아이들은 회사와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다. 둘 다 새벽에 출근하고 당직을 자주 선다. 우리 부부는 홀가분한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을 갖고 아들 부부의 새 출발을 응원했다.
가족 단톡에 지워지지 않는 숫자 '1'
급한 일은 전화로, 필요한 대화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아래 단톡방)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채팅방은 두 개다. 아들 대학 때부터 이용하던 세 명의 대화방과 결혼식 후 새로 만든 네 명의 대화방.
사실 결혼식 준비할 때 며느리 될 아이를 "단톡방에 초대할까?"라고 묻는 아들의 말에 아내와 나 모두 손사래를 친 바 있다. 문자만의 커뮤니케이션이 몰고올 수 있는 오해를 알기 때문이었다. 좀 더 서로를 알게 된 다음이라면 모를까. 아들은 섭섭했는지 모르지만, 며느리 될 아이는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결혼식 후 자연스럽게 며느리가 된 아이와의 채팅방을 새로 만들었다. 의례적인 인사말과 환영의 말이 오가곤 다시 조용해졌다. 원가족 간의 암묵적인 계약이 있었다. 형식적인 안부나 카톡에 돌아다니는 좋은 글들, '양파의 기막힌 효능' 같은 그런 메시지는 올리지 말자고.
그런데 내가 그 계약을 깨 버렸다. <오마이뉴스>에서 내 기사가 처음으로 채택된 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단톡방에 기사를 공유해버렸다. "아가, 이 글 좀 보렴. 네 시아버지가 글도 쓴단다"라는 은유를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