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여성학계는 2001년 탁신 총리가 등장하면서 점점 정치적 권위주의 문화가 강해졌고, 정권이 바뀐 후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아 젠더문제가 계속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한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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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여성주의학자들은 이처럼 '국가정치'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태국 여성학계는 젠더 문제가 정치의 전면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시점을 탁신 친나왓의 집권으로 본다. 탁신이 처음 총리가 된 2001년부터 정치적 권위주의가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의가 협소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6년 탁신이 부패혐의로 밀려난 이후에도 사회가 친탁신계열의 레드 셔츠와 반탁신 계열의 옐로 셔츠로 갈라지면서 모든 사회문제를 억누르고 있다.
찰리다폰 송삼판 탐마삿대학교 교수(정치학·여성학)는 지난 4일 "10여 년간 이어진 극심한 정치적 대립구도가 시민사회를 죽이고 있다"며 "친탁신-반탁신이 아닌 모든 것들이 덜 중요한 것으로 밀려나는데 이는 건강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군부 독재 정권 하에서 젠더 폭력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삼판 교수는 "일반적으로는 독재정권 하에서 성폭력과 범죄가 줄고 사회가 더 안정돼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라는 점이 이상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단체 중심이었던 여성 인권운동은 개별 사안을 중심 활동으로 이동했다. 대표적인 것이 '안전한 낙태' 지원활동이다. 송삼판 교수는 "'낙태 정치'가 현재 태국 여성운동의 힘"이라며 "초이스 네트워크(Choice Network, 선택을 위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국가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여성들의 삶에 직접 연관되는 캠페인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태국 여성들은 젠더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종교, 정치 체제와 정치 문화가 만든 겹겹의 과제를 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극복과제는 여성의 탄생을 전생의 과오에 따른 현생의 벌로 보는 태국식 대중 불교의 그릇된 운명론, 남자만 왕이 될 수 있는 가부장적 태국 왕정제다. 여기에는 여성을 오염된 존재로 보는 인도식 가부장제와 장자상속, 장자제사를 특징으로 하는 중국식 가부장제의 영향이 크다.
현대적인 극복과제로는 모든 법과 제도를 중년 남성 군인이 정하는 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인 군부 정치, 친탁신과 반탁신 경합에 모든 에너지가 빼앗기는 대립적 정치 환경이 있다.
콘카녹 등 젊은 여성 활동가들은 이런 겹겹의 극복과제 앞에 유보 전략을 세운 상태다. 민주적인 선거가 치러지고 민간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운동권 안에서 힘을 키우고 살아남되 여성들끼리 젠더 폭력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송삼판 교수의 메시지는 두 가지다. '선거정치는 여성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지금 조용히 있다가는 영원히 조용히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여성주의의 특기는 여성이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표현하는 것을 막는 가부장제의 도도한 역사 속에서 발언공간을 찾아낸 것"이라며 "이 특기를 살려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대화에 기초한 민주주의(Talk Base Democracy)'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거만을 이야기하는 기존 민주주의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것이 선거로 집중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많은 목소리가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태국 여성주의자는 여성주의와 젠더 문제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양성을 견디며 공존을 모색하는 방법이 민주주의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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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여성에겐 군부도, 민주화 진영도 모두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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